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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부가부 Bugaboo 등반기 - 김형일

by 안그럴것같은 202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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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실랑이 벌인 20일간의 부가부 등반; 부가부 산군의 스노패치 & 이스트포스트 스파이어 등반기

김형일 클럽샤모니 회원

 

7월1일 오후 2시30분 재미교포 산악인 호영형과 의정부 산사랑산악회 용섭의 배웅을 받으며 출국통로를 통과한다. 용섭이는 캐나다로 등반을 떠나는 우리 네 명이 부러운지 연신 투덜거린다. 등반은 산악인에게 외로운 싸움이기도 하지만 분명 행복이니 용섭의 투덜거림이 이해간다.

호영형은 우리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들처럼 걱정이 되는지 부가부 파크(Bugaboo Park)와 캐나다 현지 사정 등에 관한 것들을 계속 일러주신다. 정말 우리에게는 친형과 다름없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니 호영형의 처남인 김도현씨가 부가부파크까지 태워 주기 위해 마중나와 계신다. 밴쿠버에서 부가부까지는 1,000km 넘는 거리인데 정말 고맙고 죄송스러운 일이다.

케인산장에서 죽은 동생의 흔적 발견

 

일단 밴쿠버에서 등반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브로드웨이의 마운틴 이큅먼트(Mountain Equipment)라는 장비점에 들렀지만 오늘이 국경일(Canadian Day)이라서 영업하지 않는단다. 할 수 없이 밴쿠버에서 1박하고 내일 아침 일찍 장비를 구입하고 떠나기로 했다. 이튿날 장비점에 가서 소형 너트, 버드빅, FCU, 부가부 가이드북 등과 개인장비를 샀다. 하나엄마(김점숙씨·의정부 인공벽 클럽샤모니 대표·파이브텐팀)는 역시 엄마인가 보다. 딸의 옷을 고르기에 여념이 없다.

3일 새벽 1시15분 공원 주차장에 도착, 김도현씨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텐트 2동을 치고 짐 정리를 마치니 오전 1시50분. 13시간이 넘는 차량이동으로 전부 다 지쳐 잠을 청한다. 9시경 눈을 떠보니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다. 장비와 식량 등을 산장까지 운반하기 위해 짐을 꾸리다 보니 도저히 한 번에는 운반할 수 없을 것 같다. 할 수 없이 두 차례에 걸쳐 운반하기로 하고 김점숙·김세준(클럽샤모니 회원)씨와 나 세 명이 1차로 장비 및 약간의 식량을 짊어지고 산장으로 이동하고 조우영씨(클럽샤모니 회장)는 주차장에 남았다.

주차장의 고도는 1,450m이고 케인산장(Kain Hut)는 2,200m. 표고차 700m를 4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이동하자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고도 2,000m 정도를 넘어서자 비가 눈으로 바뀌고 해발 2,100m 지점을 지나니 완전히 폭설에다 무릎까지 눈에 빠진다. 약 5시간만에 산장에 도착해 레인저에게 배낭을 보관해 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4일 여전히 비가 내려 이동하지 못하고 다음날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아침에 그쳐 오전 11시 케인산장을 향해서 출발했다. 오후 4시 산장에 도착해 공원 레인저에게 애플비캠프(Apple Bee Camp)의 상황을 알아보니 2m가 넘게 눈이 쌓여 야영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산장에서 체류하기로 하고 배낭을 풀고 방명록을 천천히 살펴보니 작년에 왔다간 등반대원 중 동생인 형진(98년 인도 탈라이사가르 등반 중 사망)이가 남겨놓은 글이 눈에 띈다. 형진이의 흔적은 여기에도 이렇게 있는데, 하늘 나라에 있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 속 깊은 곳이 뜨거워진다.

다음날 오전 9시 아침밥을 먹고 조우영씨와 함께 캠프장과 스노패치스파이어 루트 정찰을 하기 위해 캠프장으로 이동했다. 캠프장은 눈이 2m 정도 쌓여 있어 텐트를 칠 수 없을 것 같다. 망원경으로 벽 상태를 살펴보니 정상 부근에 눈이 상당히 많이 쌓여 있어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루트를 등반할 경우 정상에서 하강할 포인트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루트 정찰을 마치고 산장으로 내려와 루트 선택을 위해 토론을 시작했다. 현재 벽 상태는 등반이 가능하므로 정상까지 이어지지 않고 하강이 가능한 루트를 선택해서 1차 등반을 시도하자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첫번째 등반 루트는 스노패치스파이어 동벽의 가장 오른쪽에 나 있는 ‘방랑자의 안식처(Hobo’s Haven·Ⅵ/5.7/A4)’로 결정했다.

오후에는 산장 뒤편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레인저 케빈과 대원들이 모여 앉아 사진도 찍고, 자기소개도 하고, 등반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김점숙씨가 1999년 동계 X게임 은메달리스트라고 소개하자 케빈은 정말이냐고 다시 한 번 물으며 괴성을 지르며 반갑다며 악수를 청한다.

7일 새벽 4시 눈을 떠서 옆을 보니 모두 너무 곤히 자고 있어 차마 깨울 수가 없다. 5시에 김세준씨를 깨워 데포시킬 장비를 메고 스노패치 스파이어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장에서 봤을 때는 금방 갈 것 같았는데 막상 오르니 오래 걸리고 힘이 많이 든다. 교대로 러셀해 가면서 동벽 루트 중 ‘인 함즈 웨이(In Harm’s Way)’를 지나치니 오전 6시30분이다. 원래 계획은 ‘방랑자의 안식처’ 아래에 장비를 옮겨놓으려 했는데 눈에 허리까지 빠진다. 할 수 없이 목표지점 100m 못미처 작은 테라스 위에 장비를 데포시켜 놓으니 오전 7시30분이다.

산장에 다시 내려와 레인저가 적어놓은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내일은 흐리고 비가 내릴 확률이 높고, 9일, 10일, 11일은 맑고 쾌청하단다. 일기예보대로 오전 10시가 넘으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할 수 없이 이틀동안 카드게임과 오락기로 시간을 보냈다.

 

 

데포시켜 놓은 자일 고퍼가 갉아먹어

 

9일 눈을 떠보니 3시 반. 부랴부랴 대원들을 깨우고 수프로 아침을 해결하고 스노패치 스파이어 데포지점에 도착해 보니 로프 3동 중 2동을 고퍼(다람쥐과)란 놈이 다 갉아먹었다. 로프 내피까지 심하게 상해 있어서 상한 부분을 잘라내고 매듭을 한 후 덕테이프(Duck Tape)로 매듭 부분을 감쌌다. 상하지 않은 로프를 등반용으로, 상한 로프 2동은 홀링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로프가 이 정도이기 망정이지 만약 고퍼란 놈이 로프를 다 갉아 놓았으면 등반도 해보지도 못하고 배낭 싸서 다시 내려가야 했을 것 아닌가!

제1, 2피치는 조우영씨가 선등하고 제3피치는 김점숙씨, 제4피치는 김세준씨, 제5, 6피치는 필자가 선등하기로 정한 후 조우영씨가 장비걸이에 장비를 세팅하고 오전 9시10분 첫피치 등반을 시작한다. A4, A3구간을 신중히 잘 나가는 것 같다.

오후 1시30분 조우영씨가 등반 완료 신호를 보낸다. 제2피치 종료 지점엔 반쯤 빠져 있는 공업용 볼트 하나와 불안전하게 박힌 녹슨 나이프하켄, 앵글하켄 하나가 전부여서 조우영씨가 30mm 앵커볼트 2개를 더 설치했다. 김점숙씨는 제3피치 등반을 위해서 홀링 로프에 주마링을 하고 김세준씨는 등반로프에 주마를 걸고 장비를 회수하면서 동시에 오른다. 조우영씨가 선등자 김점숙씨의 확보를 보고, 김세준씨가 홀링하는 사이 나는 홀백과 함께 주마링하며 루트를 관찰해 보았다. 오랫동안 등반하지 않은 까닭에 이끼와 흙이 크랙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조우영씨가 얼마나 힘들게 등반했는지 짐작이 된다.

오후 4시 김점숙씨가 제3피치 등반을 시작했다. 오늘은 제3피치까지만 등반하고 비박은 제2피치 종료지점에서 하기로 했다. 김세준씨와 필자가 포타렛지를 설치하고 홀백에서 침낭과 식량을 꺼내놓고 김점숙씨의 등반을 지켜보는데 크랙의 크기가 거의 같아서인지 다시 내려와 장비를 회수하기를 반복하며 등반하는 것 같다. 정말 짜증이 날 텐데 군소리 없이 등반을 이어 나간다.

오후 8시 등반완료 신호가 온다. 내일 등반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조우영씨가 장비를 회수하고 포타렛지에 대원 4명이 앉으니 오후 9시. 사과 반쪽, 번데기캔 1/4, 참치캔 1/4, 약간의 육포로 저녁밥을 대신하고 잠을 청한다.

10일 오전 5시 기상해서 사과 반쪽과 약간의 육포로 아침을 해결한 후 김세준씨는 제4피치 등반을 위해서, 김점숙씨는 선등자 확보를 위해 제3피치 종료지점을 향해 주마링을 시작했다. 조우영씨와 필자는 뒷정리를 마치고, 포타렛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김세준씨가 오전 7시40분 제4피치 등반을 시작한다.

김점숙씨가 그랬듯이 크랙의 크기가 같아서 다시 내려와 장비를 회수하며 등반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 같다. 훅 트래버스의 A3구간을 지나 수직크랙을 등반하는데, 장비는 부족하고 피치 종료지점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개념도에는 피치 종료지점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하늘은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가며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다. 할 수 없이 그 지점에 30mm 앵커볼트 하나를 설치하고 하강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다음 피치는 내 차례이지만, 고집을 피울 수도 없고, 정말 억울하다. 다음 루트 등반 시에는 무조건 내가 첫 피치를 등반하겠다고 투덜대면서 스타트지점으로 하강했다.

 

 

사다리 밟는 순간 확보물 빠져나가

 

12일 식량구입차 하산하는 도중 청암의 김종선 선배 일행을 만났다. 휴가를 맞아 트레킹을 하는 것 같다. 너무 반가워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김점숙씨와 무전교신을 해서 중간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하고, 레이디엄으로 이동해 식량을 구입하고 히치하이킹을 하는데 차를 세워주지 않는다.

시카고에서 온 마크와 조 일행의 차를 얻어 타고 산장에 올라와 일기예보를 보니 14일까지 비가 내린단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좋지 않은 날씨 때문에 등반할 수 없는 것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하지만 모두들 팀의 사기를 위해 표시내지 않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13일 조우영씨가 애플비(Apple Bee) 캠프장을 정찰해보니 텐트 2동은 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서둘러 배낭을 꾸려 캠프장으로 이동해 텐트를 치고 석식 후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바라며 잠을 청한다.

17일 새벽엔 날씨가 흐리더니 아침 9시경 날씨가 화창해진다. 장비를 챙겨 벽 하단으로 이동하니 오전 11시20분경. 오늘은 내가 선등하기로 했다. 등반루트는 셀톤루트(Shelton’s Route). 오전 11시50분 에이리언 3호를 설치하고 등반을 시작했다. 코너크랙이라서 자세도 안 나오는 데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서 크랙 주변에 이끼와 흙이 끼어 있다. 너트회수기와 손으로 긁어내면서 등반하자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장비를 설치할 곳을 찾느라 굉장히 애를 먹는다.

코너크랙에 작은 사이즈의 장비를 계속해서 설치하며 오르다보니 우측에 깨끗한 덧장바위 크랙이 보인다. 얼굴과 몸이 흙투성이어서 짜증났는데 잘됐다 싶다. 덧장바위 크랙에 로스트애로를 설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부가부, 나이프하켄, 작은 홋수의 캠 장비를 설치하며 덧장바위가 거의 끝나는 지점에 닿았다.

그런데 트랑고사의 TCU 0호를 설치한 다음 줄사다리를 걸고 체중을 싣고 로프를 통과시키고 나니 덧장바위가 벌어지면서 밑에 설치한 에이리언 1호가 빠져 버린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체중을 받고 있는 TCU도 빠질 것 같아 바로 아래에 에이리언 2호를 설치하고 로프를 통과시킨 후 코너크랙에 로스트애로를 설치하고 체중을 옮기니 안심이 된다.

버드빅, 소형 너트, 하켄 등을 설치하며 오르는데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며 하늘이 어두워진다. 3,4m 위가 피치 종료지점으로 좋을 것 같은데 벽이 누워 있어 등반가치가 떨어지니 그곳에 볼트를 설치하고 하강하자는 것에 동의했다. 볼트를 하나 치고 하강해 캠프장으로 철수, 장비를 정리하고 저녁 준비를 하는데 비바람이 몰아친다. 앞으로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5일밖에 없는데 날씨가 이러니 정말 걱정이다.

19일 오전 9시 일어나 하늘을 보니 많이 흐려 있다. 그래도 비는 올 것 같지 않아 등반하기로 결정하고 서둘러 장비를 챙겨 작년에 최승철씨(98년 탈라이사가르서 사망)가 등반했던 스노패치 스파이어의 동벽 다이애고널(East Face Diagonal·Ⅵ/5.7/A3) 하단으로 이동했다.

첫 피치는 김점숙씨가 선등하기로 하고 오전 11시 로스트애로를 설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작년에 남편 고 최승철씨가 등반했던 루트인만큼 한 동작 한 동작 벽을 오르는 몸과 마음이 다른 루트를 등반할 때와는 같지 않으리라. 초반 오버행과 코너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등반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말없이 신중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오른다.

 

 

 

폭우로 개척등반 도중 포기

 

오후 2시 피치 종료 신호가 왔다. 김세준씨가 제2피치 등반을 위해서 오르고 나는 장비를 회수해가며 오르는데 서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런 젠장할! 무슨 날씨가 정말 이래. 등반을 계속해야 되는지 중단해야 하는지…. 아쉽지만 등반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다시 내려와 장비를 챙겨 캠프장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식량이 부족해 22일까지는 머물 수 없으니 20, 21일 캠프장에서 가까운 이스트포스트 스파이어(East Post Spire)에 새 루트를 내자고 의견을 모았다. 작은 천장 등이 있는 라인을 발견한 것이다.

산장에서 김세준씨가 가져온 스파게티를 불려 된장과 고추장에 비벼서 먹는데 이건 음식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음식도 잘 하지만 식성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조우영씨도 배가 고프니 어쩔 수 없는지 포크를 놓지 않는다.

20일 아침 7시 눈은 떴는데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대원 모두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하기야 부실한 식량으로 20일 넘도록 해발 2,500m의 고도에서 지냈으니 체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파워바 하나, 수프 한 봉지, 참치캔 1/2로 아침을 때우고 목표지점으로 이동해 김세준씨가 장비를 세팅해서 오르기 시작한다. 남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선을 오르니 기분이 어떨지는 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모두 알 것이다.

수직 크랙을 지나 작은 천장을 트래버스하려는데 또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등반 도중 비가 오는 것에 익숙해져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다. 내일 하루 시간이 있으니 캠프장으로 철수했다.

21일 어제 종료지점으로 김세준씨가 주마링해 오른 후 계속해서 등반을 이어나간다. 2시간 정도 등반해 완료 신호를 보낸 후 김세준씨는 볼트를 박고 나는 다음 피치 등반을 위해 장비를 회수하며 오르는데 하늘이 심상치 않다.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밑에서 조우영씨로부터 등반할건지 중단할건지 여부를 묻는 무전이 온다. 나를 배려하는 동료들의 마음이 고맙기만 하다. 내 욕심 같아선 등반을 계속 이어 나가고 싶지만 날씨가 나빠지면 밑에서 고생하며 기다릴 동료들이 걱정돼서 차마 계속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서둘러 캠프장으로 철수해 배낭을 패킹해 산장으로 이동하니 부슬비는 급기야 장대비로 변했다.

이것으로 우리의 부가부 등반여행도 마무리되는 것 같다. 등반은 많이 못했지만 20일이 넘는 시간동안 불협화음 없이 지내온 동료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이젠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안기고 선후배들과 어울려 시원한 맥주 한 잔 부딪치며 정담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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