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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구냥산 주봉 야오메이봉(6,250m) 등반 자료(2) Ⅱ. 쓰구냥산 서파루트 등반설명  - 아직 미등으로 알려져 있는 전면벽의 우측 모퉁이를 따라 주능선에 오른 후 야오메이봉으로 이어지는 릿지를 따라 등반하는 코스다. 비교적 등반 거리가 짧지만 부분적으로 벽등반을 해야하며 낙석과 눈사태가 부분적으로 일어나므로 비교적 등반의 위험도가 높고 또한 여러 가지 등반기술을 필요로하는 중급이상의 등반코스라고 할 수 있다. 전면 직등 루트와 좌측칼날 릿지 등반은 잘 짜여진 경험 많은 우수한 등반대만이 등반시도가 가능한 루트라고 할 때 준 전문가로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등반코스로는 서파능선 루트가 최고의 등반루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지등반 가이드가 필요한 곳에 와이어 사다리를 설치하고 픽스로프도 미리 설치하므로 재미난 등반을 즐길 수 있다.  ☞ 이동로 일륭 →.. 2025. 2. 28.
쓰구냥산 주봉 야오메이봉(6,250m) 등반 자료(1) 쓰구냥산은 아직 우리에게 너무도 생소하게만 남아있다.원정대가 한 번도 발길을 들여놓지 않았으므로 정보도 없고경험도 없다. 그러나 쓰구냥산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그리 먼 산이 아니다. 짧게는 일주일안에 5천대에 오를 수 있고 길게는 15일 이내 6천 대 봉우리를 오를 수 있는 손꼽는 등반대상지다. 더욱이 작년 4월부터 서남항공이 취항하면서 사천성의 산들은 우리에게 더욱 가까워졌으며 사천성의 산을 대표하는 미봉 쓰구냥은 산국의 산악인들을 맞이하기 위해 꽃단장을 하고 있다. 미답봉의 매력을 지닌 험악한 산이지만 앙칼지고 사납게만 보이는 쓰구냥산엔 여인내의 숨겨진 매력이 있다. 기세에 주눅들지 말고 길을 찾아 오르막을 오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정상은 다가온다. 전면벽은 아직 미등으로 남아있다지만 전면벽이 아.. 2025. 2. 26.
앞으로 에베레스트 등반의 전망 “보다 더 높이......!” 높이 오르고자 함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다. 특히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보고 싶어 찾아오고, 오르고 싶어 찾아온다. 그리고 매년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또한 해가 갈수록 에베레스트는 점점 더 우리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입산신청만 하면 바로 허가가 나오고, 산에 접근하기도 쉽고, BC생활도 다른 고산보다 훨씬 편하고, 등산은 시작부터 하산까지 철저히 셀파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고, 성공률도 높으니 왜 아니 가겠는가! 1) 네팔정부의 고민에베레스트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고민하는 데가 있다. 바로 네팔정부다. 다른 고산과의 형평성 때문이다. BC까지의 트레킹도 마찬가지다. 에베레스트를 찾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네팔.. 2024. 11. 25.
오늘날 한국인의 에베레스트 등반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를 찾는데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히말라야의 7~8,000m 급 그 수많은 고산 중에서 유독 에베레스트로만 몰리고 있다. 어차피 위험한 고산등반인데 비록 돈은 더 들지만, 이왕이면 성공률과 안전성도 높고, 일반인에게 인기도 높은 세계 최고봉에 오르겠다는 심산이다.  1) 에베레스트만이 산악인의 목표인가!전 세계에서 해마다 봄, 가을로 수백, 수천 명씩 에베레스트에 몰리니 고산의 경험이나 장비의 발달, 세계로 향한 안목 등 이미 산악선진국 대열에 들어갔다고 자부하는 우리 한국의 산악인들에겐 보이지 않는 큰 자극제가 된 모양이다.“우리 연맹에서......, 우리 지역에서......, 우리 산악회에서......, 한 번쯤은 세계 최고봉에 올라야하지 않느냐!”.. 2024. 11. 21.
과거와 현재의 에베레스트 등반 비교 1977년과 2007년. 이 30년의 변화는 실로 엄청나다. 더욱이 인터넷의 대중화로 인한 신속한 정보교류의 발달은 그야말로 3,000년 이상의 변화만큼이나 실감케 한다.이 30년간 급변하는 국제사회 속에서 우리산악인들이 행하는 무상의 행위인 히말라야 원정, 특히 에베레스트 등반스타일이 과연 어떻게 변화되고, 등반장비 등은 또 어떻게 발전됐으며, 또 대체로 어떤 가치관의 변화가 있었나? 지금부터 그 시공을 오가며 두서없이 비교해볼까 한다.  1) 통신의 변화 30년의 변화로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국과 네팔의 국제전화통신 시스템이다. 30년 전 당시 까마득히 먼 나라 네팔로 전화를 걸려면 서울국제전신전화국(현 광화문 교보빌딩 자리)을 찾아가야만 했다. 전화신청을 서면으로 제출하고 느긋이 기다리면 .. 2024. 10. 15.
1977년 한국의 에베레스트 원정 요약 우선 1977년 당시 한국대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1971년 봄. 대한산악연맹은 한국으로선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미터 급 고산에 원정대를(대장 박철암 외 10명) 파견했고, 그 대상은 에베레스트 산군에 위치한 로체샬(Lhotse Shar, 8,400m)이었다. 로체샬은 등반성이 어렵기로 정평이 난 산이었으며, 우리가 입산 신청할 당시 거의 유일한 8,000미터 급 미답봉(未踏峰)이었다. 그러나 바로 1970년 봄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초등정(初登頂)에 성공했다. 당시 우리 원정대는 고산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이 전무(全無)한 상태에서 너무 벅찬 대상을 오르며, 여러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등반을 계속했으나, 국내처음으로 8,000미터 선을 넘어섰다는 것에 만족하고, 등정에는 실패했다. 그.. 2024. 10. 11.
소백산 등산지도 2024. 10. 4.
에베레스트 시대별 등반사 (2000년~ ) 2000~2007년 : 기술개발과 장비의 발전, 정보의 공유 등으로 등정자수 증가, 봄 시즌 남쪽 기존루트 등반이 등정율 높아 상업등반대 급증. 예측불허의 시대세계 최고봉에 대한 인기는 개인적 성취차원과 등반능력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상업등반대 활약 등으로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21세기가 열리면서 등정자는 100명 선에서 200명 선으로 해마다 100명씩 증가추세에 있고, 올해 500명을 돌파했다. 또한 등반의 난이도보다는 최고령, 최연소, 최단시간, 등반 횟수등 개인적인 기록경신에 많은 기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초등 이후 에베레스트의 의미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 역사적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에베레스트가 아무리 접근하기 쉬워졌다고 해도 결코 쉬운 산이 아님을 가슴에 새겨.. 2024. 8. 30.
에베레스트 시대별 등반사 (1980~1999년) 고쿄리에서 본 에베레스트 1980-1989년 : 원정대 폭발적 증가와 새로운 등반방식의 추구, 새 루트개척의 경쟁시대. 동계초등과 남릉루트 초등정시대 중국이 79년 문호를 개방하면서 등반기회가 많아지자 등반대가 폭발적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70년대 불과 26개팀에서 80년대에는 무려 139개 팀으로 6배 이상 늘어났다. 산악강국들은 새 루트의 개척 경쟁에, 산악 신생국들도 경제성장과 등반활동 성장기를 거쳐 양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다변화된 등반목적에 따라 새로운 등반방식을 추구하고, 난이도가 높은 루트와 무산소 극한등반을 추구하는 원정대가 늘어난 시대였다. 결국 등반방식이 변화되면서 괄목할만한 등반이 많이 이루어져 9개의 새 루트와 2개의 변형루트가 탄생되었다.  1980년 : 동계 초등. 무산.. 202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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