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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인의 에베레스트 등반

by 안그럴것같은 2024.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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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를 찾는데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히말라야의 7~8,000m 급 그 수많은 고산 중에서 유독 에베레스트로만 몰리고 있다.

어차피 위험한 고산등반인데 비록 돈은 더 들지만, 이왕이면 성공률과 안전성도 높고, 일반인에게 인기도 높은 세계 최고봉에 오르겠다는 심산이다.

 

1) 에베레스트만이 산악인의 목표인가!

전 세계에서 해마다 봄, 가을로 수백, 수천 명씩 에베레스트에 몰리니 고산의 경험이나 장비의 발달, 세계로 향한 안목 등 이미 산악선진국 대열에 들어갔다고 자부하는 우리 한국의 산악인들에겐 보이지 않는 큰 자극제가 된 모양이다.

“우리 연맹에서......, 우리 지역에서......, 우리 산악회에서......, 한 번쯤은 세계 최고봉에 올라야하지 않느냐!” 하는 기본심리가 많이 작용하고 있고, 더 나아가 시시한 남들도 오르는데 똑똑한 우리가 최고봉에 못 오른다는 것은 일종의 수치고, 체면문제라는 것이다.

이제 에베레스트 등정의 문제는 영예(榮譽)나 영광 또는 자긍심의 차원이 아니라, 자존심과 명예회복 또는 탈망신의 차원으로 변했다.

그런데 문제는 작금에 들어 너무나도 크게 변질된 에베레스트 등반형태와 그 등반정서의 실상을 아직 모르는 분이 많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히말라야의 수많은 고산들을 등반해왔다. 이중에 1982년 고줌바캉(7,806m) 초등정, 1983년 바인타브락 2봉(6,960m) 초등정, 1988년 눕체 서봉(7,745m) 동계 초등정, 1994년 안나푸르나(8,091m) 남벽 등정, 199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 2000년 K2(8,611m) 남남동릉 등정, 2005년 낭가파르밧(8,126m) 루팔벽 등정, 2006년 탈레이사가르(6,904m) 북벽 등정, 2007년 로체샬(8,400m) 남벽 등정 등 타에 귀감이 되는 훌륭한 등반도 일일이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또 본격적인 히말라야 진출이 이루어진 1980년대 중반부터 불과 10여년 만에 8,000미터가 넘는 14개봉의 완등자를 세 명이나 배출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는 전 세계 산악계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없는 실로 엄청난 대기록이며, 한국 국민의 위대한 저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만 크게 다루었다.

산악계건 언론이건 오직 에베레스트였다. 에베레스트는 산악인의 상징이요 비유며, 궁극의 목표이자 지고의 위업이라 했다. 오직 에베레스트만 거기에 있었다(because it is there).

그래서인지 우리가 처음 등정한 8,000미터 봉이 바로 1977년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고, 가장 많은 원정대가 등반한 산도, 등정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산도 에베레스트다.

 

1977년 첫 등반부터 금년 봄까지 총 60개 팀(屍身발굴이 목적이었던 2005년 휴먼원정대는 등정이 목적이 아니므로 제외시킴)이 도전하여 40개 팀이 등정에 성공했다. 이중에 외국의 상업등반대들이 대거 진출하고 있는 최근엔 함께 오를 수밖에 없는 우리의 등정성공률도 덩달아 높아져서 2000년 이후 총 29개 팀에서 26개 팀이 성공했다.

등정자는 모두 85명(여자 7명 포함)이다. 실지로 정상에 오른 한국인은 연인원 93명(2000년 이후 65명)에 달하지만, 여기엔 두 번 오른 산악인이 4명(박영석, 이 인, 박무택, 김재수), 세 번 오른 산악인이 두 명(엄홍길, 허영호) 있다. 반면에, 등반 중 사망자는 총 17명(대원 9명, 셀파 8명)에 이른다.

 

 

 

2)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에게 인기 높은 에베레스트

시대의 변화에 따라 히말라야 등반도 그 형태나 방식이 변하기 마련이겠지만, 에베레스트는 변해도 너무 변했다. 우리 한 번 생각해보자. 30년 전처럼 그 긴 카라반을 해야만 에베레스트로 향하는 진정한 의미와 낭만이 있고, 아이스폴에 직접 루트를 만들고, 대원이 스스로 끝까지 길을 개척하며 올라야만 에베레스트 등반의 진정한 멋과 맛이 있다고 우긴다면 요즈음 산악인들이 과연 인정할까?

여하튼 과거의 카라반과 등반방식은 이미 에베레스트에선 불가능하게 되었다. 카라반 길도, 등반스타일도, 사고방식도 앞에서 언급한대로 모두 변해버린 것이다.

 

서운한 심정이지만, 에베레스트는 이제 우리 산악인 곁을 떠났다. 우리 산악인만의 전용물에서 일반인과의 공유물로 옮겨진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에베레스트에선 더 이상 참다운 개척정신도 없고, 진정한 모험심도 없다. 팀워크도 동료애도 점차 없어지고 있다. 오로지 정상에 오르는 행운을 잡느냐, 아니면 못 잡느냐만 존재한다.

셀파에게 그렇게 의존해서라도, 날씨 좋은 날을 골라,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제3캠프부터 산소마시며, 줄지어서라도 꼭 세계 최고봉 정상에 서고 싶다면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젠 1년에 수백 명씩 등정하는 에베레스트에 가겠다고 스폰서 잡기도 산악인으론 좀 민망한 노릇이 되었다. 금년인 2007년 봄철에만 모두 628명(외국인 311명)이 등정했다.

에베레스트는 광고효과도 당연히 줄어들었다. 고산과 거벽으로 향하는 원정대 중 해마다 몇 개 팀을 선정해 자금지원을 하고 있는 대한산악연맹도 이제는 그 대상이 에베레스트라면 지원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다.

 

또 이렇게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들 세계 최고봉 등정자 명단에 기재된다는 사실과 자기만족에 그칠 뿐, 남에게 크게 자랑할 만한 일은 못된다. 적어도 산악인 사이에서는.......

더 나아가 에베레스트만 다녀온 산악인은 결코 진정한 히말라야 등반을 논할 수 없다. 세계 최고봉 정상에 올랐다고 마치 자신이 대단한 등반가인양 개척과 도전정신을 논하고 진정한 알피니즘을 이야기한다면 그는 필경 과대망상이 심하거나 거짓말쟁이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변해 버렸다. 그러나 다행히 히말라야에는 우리 산악인이 올라가야할 멋지고 훌륭한 산들이 워낙 많이 있으니, 에베레스트를 잃었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세계 최고봉은 일반인에게 양보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산악인은 설악산에 가도 일반인과 달리 꼭 대청봉에 오르지 않는다. 대청봉이 최고봉이라는 뜻 외에 별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리라.

 

반면에, 일반인에게 에베레스트는 하나의 상징이며 목표다. 세계 최고봉을 찾아가 내 눈으로 직접 보고픈 마음, 나아가 저 최고봉 정상에 오르면 얼마나 기쁠까! 하는 막연한 꿈이 있다. 또 기가 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슬픈 이야기지만, 다른 고산에 오른 산악인보다도 세계 최고봉에 오른 사람이 더 멋져 보일수도 있을게다.

등산에 입문하는 사람에게도 언젠가 세계 최고봉을 기필코 오르겠다는 그 순수한 야망이 있을 것이며, 산에 다닌 지 오래된 베테랑 산악인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존심과 체면상 세계 최고봉에 한번쯤 도전해봄직 할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에베레스트BC로 향하는 그 수많은 트레킹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국각지에서 엄청난 수의 한국인이 에베레스트를 찾아가고 있다. 최근 들어 봄, 가을 뿐 아니라 계절구분 없이 에베레스트BC로 향하는 한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진 동호인들은 날씨가 싸늘하지만 맑은 하늘의 겨울철을 선호한다.

때문에 어느 등산잡지도 에베레스트 트레킹단 모집광고가 1년 12달 없는 달이 없다. 인천과 카트만두 구간에 대한항공(KAL) 직항로가 생긴 것도 에베레스트BC를 찾아가려는 그 수많은 트레커와 무관치 않으리라.

그런데 우스운 것은 아직도 많은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BC까지 트레킹하려면, 우선 국내산에서 열심히 훈련을 쌓은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에베레스트BC까지는 한마디로 착각이고, 난센스(nonsense)다.

등산 전혀 안 해본 일반인도 충분히 가능하다. 청소년 학생도,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도 고소적응만 잘 되면 누구나 충분히 에베레스트BC 방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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