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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치마 그란데 디 라바레도 서벽 듈퍼 루트

by 안그럴것같은 202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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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테 등반1/치마 그란데 디 라바레도 서벽 듈퍼 루트

·사진 이영준 기자

 

알프스에 철의 시대가 있었다.지금으로부터 백여년 전, 누구나 더 가파르고 힘든 벽으로 향했던 그 시대를 연 건 몇몇 선구자들이었다.1908년 영국의 오스카 에켄 슈타인이 처음 10발 아이젠을 발명하고 1910년에는 독일의 오토 헤르조그가 소방수들이 사용하던 서양 배 모양의 쇠고리로 최초의 카라비너를 만든다.같은 해 오스트리아의 한스 피흐틀 또한 지금과 같은 모양의 하켄을 발명해 불붙은 철의 시대에 기름을 끼얹는데, 이때 빼놓지 말아야 할 사람이 한명 더 있다.바로 독일 클라이머 한스 듈퍼. S자하강, 또는 현수하강으로 알려진, 온 몸의 마찰력을 이용해 빠르게 내려오는 듈퍼지츠 기술을 고안해 낸 한스 듈퍼는 철의 시대를 살며 레이백(발로 밀고 손으로 당기는 크랙등반기술), 펜듈럼(진자횡단), 난이도 등급 등 현대등반기술의 거의 모든 것을 체계화시켰다.1893년생인 그가 언제부터 바위에 매달렸는지는 알 수 없다.하지만 듈퍼지츠 기술을 고안한 것이 1910년경으로 알려져 있으니 적어도 10대 때부터 수많은 산을 오르내린 것이다.그런데 알피니즘의 역사를 보면,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을 정도로 세상을 너무 빨리 달린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했다.듈퍼도 예외는 아니라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는 1915 22세라는 젊은 나이로 전사했다.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그는 돌로미테 지역에서 벌어진 산악전쟁에 참전했을 것 같다.왜냐하면, 그가 살아있을 적 숱하게 오르내리던 모산(母山)이 바로 돌로미테이기 때문이다.돌로미테의 맹주(盟主) 치마 그란데 디 라바레도(3003m)에도 듈퍼의 흔적은 있다.그가 자일파트너 발터 폰 베르누트와 함께 치마 그란데를 찾은 건 1913 8 18일이었다.아마 당나귀를 타고 오지 않았을까. 그때까지 치마 그란데에는 1869년 프란츠 이너코플러의 초등루트인 남벽과 1909년 앙겔로 디보나가 오른 동벽루트 밖에는 없었다.듈퍼가 그린 선은 서벽에 수직으로 뻗은 270m의 침니와 크랙으로, 그는 5+급이라는, 당시로서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등반 끝에 정상에 설 수 있었다.

 

돌로미테의 맹주 치마 그란데 

프랑스 산악인 가스통 레뷔파의 책 <별빛과 폭풍설>에 알프스 6대 북서벽으로 소개된 치마 그란데 디 라바레도는 높이 3003m, 만년설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깎아지른 북벽은 그 앞에 선 누구나 움츠러들게 만들 정도로 위용을 자랑한다.북벽을 등정한 건 1933년 에밀리오 코미치에 의해서였지만, 그 이전에도 치마 그란데 주변의 젝스턴 돌로미테는 수많은 등반가들에게 모험과 도전의 대상이었다.한국산악회 등반대의 처음 계획은 북벽 코미치 루트였기에 정확한 자료 수집을 위해 가이드북을 구입하고 남티롤산악회 등산학교 강사라는 친구를 소개받아 등반루트에 대한 개요와 하산루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이미 한차례 치마 그란데 주변을 트레킹하며 대강의 등반선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지만 구름에 쌓인 빤빤한 북벽은 쉽지 않아보였다.그런데 이 친구 말이 코미치 루트는 확보물이 부실하고 7피치 이상 오르면 후퇴가 어려우니 먼저 듈퍼 루트를 등반하고 하산로를 정확히 익힌 후 시도하라는 것이었다.날씨를 조심하라는 인사를 끝으로 그와 헤어진 후 상의 끝에 듈퍼 루트로 대상지를 바꾸기로 결정했다.듈퍼 루트도 전체 난이도는 코미치 루트와 같은 5+급이지만 하단은 250m 설벽으로 되어있고, 상단 270m만 등반하면 되었기에 시간은 훨씬 줄어들 것 같았다.

등반 기점인 오론조 산장에 도착해 짐을 풀고 다음날 아침 일찍 등반에 나서기로 했다.산장 벽에 붙은 이탈리아어로 된 일기예보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그림에는 햇살 모양이 3개나 그려져 있었다.새벽 6, 산장 문을 열고나서니 상쾌한 공기가 온 몸을 적신다.저만치 여명의 그림자가 산의 지평선을 두드리는 시간, 멀리서 풀을 뜯는 소들의 종소리 말고는 산과 나 외에 아무것도 없다.3개 연봉으로 되어있는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를 왼쪽으로 끼고 돌아 한 시간여를 걸어야 등반 시작점에 닿는다.푸른 초원을 가로질러 북벽이 바라보이는 능선에서 바로 모레인 지대로 붙었다.멀리서 볼 때 가느다란 선이 보이는 모레인 지대는 길이 나있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은 없어 걷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더군다나 벽 앞에까지의 접근은 마지막에 길을 버리고 발이 끊임없이 밀리는 자갈밭을 기어올라야 했기에 체력소모가 많았다.듈퍼 루트는 서벽이지만 북벽쪽으로 접근해 치마 그란데와 치마 오베스트 사이의 골짜기로 들어서야 한다.긴 꿀르와르에는 겨우내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있었다.모레인 지대보다는 걷기가 쉬웠지만 아이젠이나 스틱 하나도 준비하지 못하고 경등산화를 신은 우리들은 꽤나 가파르게 서있는 250m의 설벽에서 진땀을 빼야했다.다행히 그 골짜기 사이로 떨어지는 낙석은 없었다.소림사의 수행법처럼 손가락을 눈밭에 찔러가며 지지점을 삼아 엉금엉금 기어간 끝에 산장을 나선지 두 시간이 다 되어서야 루트 시작점인 바위 아래에 닿을 수 있었다.깊은 콜사이에 솟은 벽 아래에는 녹슨 하켄 하나가 박혀있었다.

 

박석희(한국산악회등산학교 강사)씨가 먼저 앞줄을 묶고 부스러지는 바위를 엉금엉금 오르기 시작했다.모두 암벽화를 준비하기는 했지만 언뜻 보기에 홀드가 많은 석회암 바위는 경등산화를 신고도 충분히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듈퍼는 딱딱한 구두를 신고 올랐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보다 더 좋은 장비와 기술을 갖춘 우리들은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알프스 등반은 마치 보다 더 큰벽으로 가기 위한 연습장쯤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하지만 쉽게 지나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바로 알파인 스타일에 대한 이해다.알파인 스타일은 모든 장비를 스스로 메고 고정로프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한 번에 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인데, 거기에는 힘든 어프로치와 알프스식의 등반, 하산방식이 포함된다.최근의 국내 암벽등반은 대부분 미국에서 전해진 요세미티식 등반기술로, 그것은 튼튼한 확보지점, 충분한 중간확보물, 자기확보, 완벽한 루트 파인딩과 안전한 하강을 기본에 두고 있다.때문에 인수봉을 오르며 볼트가 뽑힐까봐 걱정하거나 하산이나 일기변화를 염두에 두고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하지만 최초의 등반을 생각해보면, 듈퍼의 시대만 하더라도 겨우 대장간에서 두들겨 만든 불안한 하켄 몇 개가 있었을 뿐이며, 하강은 곧 목숨을 거는 일이었을 것이다.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확보의 개념은 없었을 테고, 그들은 절대로 떨어져서는 안 되는 사명을 가지고 허리에 불안한 보울라인 매듭을 한 채 물이 흐르는 미끄러운 침니에 온 몸을 비볐을 것이다.새가 낮게 날거나 귀에서 매미소리가 들린다면 그들은 그저 가슴에 성배를 그으며 폭풍과 번개가 자신을 비껴가기만을 바랬을지도 모른다.어쨌든 수많은 인공위성을 동원한 일기예보에는 햇살 세 개가 웃고 있었으니 쇳덩이를 주렁주렁 달고도 졸지에 통닭구이가 될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백년 전 듈퍼는 어떻게 올랐을까

첫 피치는 개념도와는 다른 것 같았다.어쩌면 이곳은 후일 다른 이들이 오르다 만 루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개념도에는 왼쪽으로 트래버스하게 되어있었으나 자연스런 등반선은 오른쪽으로 나있었다.그렇다면 우리는 시작지점을 잘못 택한 것이다.하지만 머리위로 보이는, 커다란 촉스톤이 박힌 침니를 산장에 걸려있는 사진에서 확인했으니 어쨌든 그리로 가면 되는 것이다.처음 만져보는 석회암은 마른 곳을 잡으면 초크가 저절로 묻는 것처럼 든든한 마찰력을 유지했지만 조금이라도 물이 흐르는 곳은 물미역처럼 미끄러워 머리털을 곤두서게 했다. 40m를 횡단해 오른쪽으로 나아가자 경사 70도 정도의 페이스가 펼쳐졌다.신기하게도 오르는 곳에 하켄이 있었고, 시야를 가린 작은 오버행을 넘어 손을 더듬으면 그곳에 홀드가 있었다.등반의 어려움은 많지 않았으나 계속해서 떨어지는 불안한 낙석이 문제였다.마치 자갈로 만든 거대한 성 같은 치마 그란데는 쉴 새 없이 낙석을 떨어트렸다.어떤 것은 미처 확인하고 피하기도 전에  소리를 내며 총탄처럼 머리 위로 지나갔다.어디든 40m쯤 오르고 나면 넓은 테라스가 있었다.테라스에는 위에서 떨어진 낙석이 무수히 쌓여있었다.

 

우리는 캠과 너트 한 세트씩을 준비했지만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장비는 웨빙슬링이었다.손으로 잡기만 해도 쑥쑥 빠져나오는 부실한 바위에서 다른 확보장비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적당한 암각에 슬링을 두르고 크럭스를 넘어서며 조금씩 고도를 높여갔다.등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박석희씨가 앞장서 올라 한 피치를 끊으면 뒤이어 그 확보물을 이용해 유학재씨가 다시 선등을 섰다.두 사람이 오르고 나면 이상세씨와 기자는 2~3m 간격을 두고 후등으로 장비를 회수하며 올랐다.백년 전 듈퍼라고 생각하고 루트 파인딩 하면 돼.” ‘이곳이 길이라고 알려주는 흔적은 고작 목이 부러진 녹슨 하켄, 적어도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빛바랜 슬링이 전부였기에 마치 레고 블럭을 쌓아놓은 듯한 바위에서 개념도를 보고 루트를 찾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었다.유학재씨는 특유의 노련함을 살려 감각적으로 길을 찾았다.개념도에 5급으로 표시된 피치는 런 아웃(확보물 사이의 간격)이 길거나 아예 50m 가까이 중간확보물이 없는 구간이기 때문에 그만한 난이도를 부여한 것 같았지만 홀드가 많아 요세미티식 난이도로 치면 5.6급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한스 듈퍼가 고안하고 1932년 빌로 벨첸바흐가 확립한 암벽등반 난이도 체계는 돌로미테에서 시작했다.발첸바흐는 1급부터 6급까지 루트의 전체 등급과 각 피치별 등급을 구분해 표기했는데, 거기에는 아크로바틱한 등반 동작뿐 아니라 루트 파인딩, 탈출, 확보물, 낙석 등의 위험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다.인수봉 취나드A 코스가 발첸바흐 등급으로는 6급으로 인수봉에서 가장 어렵지만 크럭스 난이도는 5.10급인걸 보면 난이도에 관한 개념은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는 조금 다르다.

당시 하켄이 발명되기는 했지만 듈퍼는 페이스보다 촉스톤을 이용할 수 있는 침니나 크랙을 택했을 것이다.계속 물이 흐르는 축축한 침니에서 그는 날카로운 바위에 옷을 찢기며 온 몸을 비볐을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도 그렇게 가면 된다.5피치부터 나타난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는 침니 앞에서 돌아갈 수 있는 다른 길을 찾다가 결국 그대로 직상하기로 했다.예상대로 그 지점에는 하켄이 연달아 세 개 박혀 있었는데, 개념도와 일치했다.젖은 몸을 털고 침니를 20m 올라 밖으로 빠져나오니 꼭 스노바가 필요할 것 같은 거대한 자갈밭이 나타났다.디에드르 크랙을 올라 이제 링 밴드까지는 70m가 남았다.링 밴드는 치마 그란데 정상부를 한 바퀴 도는 거대한 고리와 같은 테라스로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다.링 밴드에 다다르니 군데군데 오버행 처마 아래에 비박지가 있었다.갑자기 폭풍이 몰아치거나 날이 어두워졌을 때 사람들은 이곳에서 몸을 피했을 것이다.케른을 따라 링 밴드를 오른쪽으로 횡단해 정상과 이어지는 쉬운 바위턱을 안자일렌을 하고 오르기 시작했다.정상까지는 등반거리 약 150m로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 탓에 바위가 매우 미끄러웠다.정상에는 아무도 없었다.키보다 높은 커다란 십자가가 서 있었고, 거기에는 작은 노트 한 권이 매달려 있었다.지금까지 이곳에 다녀간 사람들이 적어놓은 방명록인것 같았다.각자 이름을 적은 우리들은 그제야 퍼질러 앉아 주린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시간은 오후 3. 아직 해가 지려면 7시간이 남았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하산루트로 알려진 남면 초등루트를 찾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한참을 뱅글뱅글 돌다가 우연히 하강지점에 로프를 걸고 막 내려가려는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꽤나 고생을 했을지도 모른다.그는 서툰 영어로 아 유 오케이?”라고 나에게 물었다.속으로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태연하게 하강을 기다리는 것처럼 문제없다고 대답했다.하산은 초등루트를 따라 침니 사이로 30m 3번 하강한 후 남벽을 사선으로 클라이밍 다운을 하는 길이었다.다음 하강 지점은 바로 나타났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앞서가던 사람들은 하강을 마치자 산양처럼 비탈을 뛰어 내려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그때부터 길 아닌 길을 찾기 위한 고난은 시작되었다.그저 , 듈퍼도 딱딱한 구두를 신고 클라이밍 다운을 했겠지라고 생각하는 수밖에는 없었다.미로같은 침니를 돌고 돌아 3급으로 매겨진 작은 오버행을 내려설 때 홀드가 훌러덩 뽑히며 머리털이 쭈뼛거리던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한다.

 

INFORMATION 치마 그란데 디 라바레도 서벽 듈퍼 루트

젝스턴 돌로미테 자연공원에 있는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는 돌로미테를 대표하는 봉우리 중 하나다.치마 피콜로(2856m), 치마 그란데(3003m), 치마 오베스트(2972m)  3개 봉우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남면은 경사 60도 내외로 완만하지만 북벽은 전체적으로 오버행을 이룬다.중앙봉인 치마 그란데는 1869년 프란츠 이너코플러가 남면으로 초등한 이후 현재까지 17개 루트가 나 있다.알프스 6대 북서벽 중 하나인 북벽은 1933년 에밀리오 코미치가 초등했다.듈퍼 루트는 치마 그란데에서 3번째로 개척된 루트로 1913년에 등반이 이루어졌다.침니와 크랙, 페이스로 이루어졌으며 하단 설벽 250m, 암벽구간 270m로 되어있다.

 

등반정보 북벽쪽으로 접근해 모레인지대를 가로지르다 치마 그란데와 치마 오베스트 사이의 골짜기로 올라야 한다.응달이라 6월까지 눈이 녹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알파인 스틱이 있으면 편리하다.콜까지 오르면 녹슨 하켄 하나가 박혀있는 시작지점이 나온다.각 피치 종료지점 테라스에는 하켄이 박혀있지만 오래되어 부실하다.너트나 캠으로 안전장치를 하는 것이 좋다.링 밴드까지 8피치로 구분되어 있지만 등반자가 판단해 적당한 곳에서 피치를 끊으면 된다.링 밴드에서 정상까지는 안자일렌을 하고 오른다.하산은 3번의 하강 이후 클라이밍 다운을 해야 한다.하산로는 남벽 초등루트를 따르며 첫 하강지점은 남벽을 마주보았을 때 링 밴드 가장 오른쪽에 있다.침니 사이로 30m 3번 하강한 후 계속 왼쪽으로 횡단해 클라이밍 다운한다.곳곳에 케른이 있지만 날이 어두워지면 길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벽에서 비박하는 것이 낫다.4명이 등반에 7시간, 하산에 5시간이 걸렸다.

 

교통편 돌로미테 주변은 대중교통편이 드물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볼차노 공항이나 기차역에서 렌터카를 빌릴 수 있다.볼자노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가 브릭슨~브루넥~도비아코로 이어지는 길을 따른다.도비아코에서 코르티나 담페조 방면으로 가다보면 듀렌시 호수가 나오고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 입구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볼자노에서 산 입구까지는 3시간이 걸린다.자연공원 입구에서는 승용차의 경우 주차료 20유로를 받는다.주차료는 1회권으로 매번 입장할 때마다 따로 내야한다.

 

숙박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를 등반하기 위해서는 오론조 산장이나 라바레도 산장을 이용한다.두 곳 모두 이탈리아산악회(CAI)에서 운영하는 산장으로 침대가 6개 있는 도미토리 형식의 방은 1인당 14유로이고 저녁과 아침식사를 포함하면 35유로다.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4인실은 1인당 식사를 포함해 42유로. 한국산악회 회원증 등 UIAA 가맹단체 회원임을 증명하면 3유로가 할인된다.저녁식사는 뷔페식으로 나오고 아침은 빵과 커피 등이 나온다.음료 등은 가격이 비싸므로 식수는 미리 가져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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