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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공간을 활보한다. 암벽등반

by 안그럴것같은 202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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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원종민 / 코오롱등산학교,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수

 

깎아지른 바위절벽에 매달린 암벽등반가들. 그들은 왜 힘들고 위험한 암벽에 스스로 매달리는 것일까? 그들에게는 고소공포증도 없고, 자신의 생명에 대한 소중함도 모르는 사람들인가? 다시 내려올 산을 올라가는 것도 이해를 할 수 없는데, 게다가 무서운 암벽까지 타는 것은 더욱더 알 수 없다는 것이 암벽등반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다.

그러나 암벽등반가는 위험 속에 자신의 신체를 무방비로 내 던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신체손상이나 죽음에 대하여 초연할 수 있겠는가? 그들도 보통사람과 다름없이 두려움이 많고 생명에 대한 애착도 강한 사람이암벽등반에는 분명 위험요소가 있지만, 기술과 장비로 이런 위험요소를 배제시킨다.

쉽게 얘기해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장비와 기술을 사용하고, 위험상황을 제거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며 오른다. 이것이 암벽등반을 안전하게 하는 기초기술이며, 암벽등반을 하기 전에 이런 것이 완전히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등반을 하지 않는 것이 안전등반의 원칙이다. 암벽등반은 위험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곤란함에 대한 계산된 도전이다.

 

그래도 간혹 등반 중에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그런 사고들의 원인을 살펴보면 기본원칙에 충실하지 않았거나, 부주의와 방심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 안전운전기술을 모르는 사람이 자동차운전을 하거나, 펑크의 위험성이 있는 타이어를 점검하지 않고 운행했을 때 벌어지는 사고와 같은 문제로 이해하면 된다. 암벽등반은 추락을 전제로 한다. 추락해도 무사하도록 안전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조금 더 암벽등반을 하는 이유에 대한 본질을 살펴보자. 우리 인간은 진화과정 속에 자연의 혹독함을 극복하는 능력을 잃지 말고 계속 향상시켜라라는 유전신호가 각인되어 있다. 암벽등반가들은 우리의 조상이 물려준 인간의 강인한 자연적응력을 잃지 않고 유지시키는 파수꾼들이다. 이들은 자꾸 도시문명의 안락함 속에 나약해지고 상실되어 가는 인간의 야성과 원시성을, 험난한 산악의 암벽등반을 통해 유지하고 발달시켜 후손에게 물려준다. 그래서 암벽등반가들은 본능에 따라 암벽을 찾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성취감과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암벽등반에도 난이도라는 것이 있다. 보통 숫자로 표시하는데, 각자 암벽등반기술의 수준별로 자신의 능력에 맞는 난이도를 가진 암벽코스를 찾는다. 능력보다 어려운 코스를 오르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다. 아무리 안전장치를 한다고 해도 자주 떨어지는 것은 좋을 것이 없다. 수준높은 등반가가 초급코스를 오르면 흥미를 느낄 수 없다. 기술과 체력을 연마해서 조금씩 높은 난이도에 도전하고 성공할 때, 등반가는 희열을 느낀다.

그것은 인간역량의 확장이며 진화를 실현한 것이다. 박태환 선수가 기록을 단축하고, 김연아 선수가 좀 더 멋진 공중회전연기에 성공하고, 학자가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고, 예술가가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 모두가 인간이 지닌 다양한 능력을 확장하는 것이며, 인류는 그렇게 진화한다. 암벽등반은 인간의 활동가능 영역을 수직으로 확장하는 공간의 활보다.

인간에게는 오르는 것을 즐기는 본능이 있다. 걸음도 못 걷는 갓난아이가 무조건 높은 곳을 기어 오르려하고, 어릴 적에는 나무나 담을 올라가는 놀이에 해 저무는 줄 모른다. 점차 생활의 틀 속에 갇히는 나이가 되면 본능적인 놀이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나이가 되면서 산을 찾고, 어느 날 이유도 없이 암벽등반에 필(feel)이 꽂혀 조심스럽게 암벽등반을 시작해 보면 알 수 없는 흥분과 쾌감을 느낀다.

 

암벽등반은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암벽등반이란 것은 매우 격렬한 동적(動的) 운동이 아니라, 차분하게 자기 수준에 맞게 차근차근 오르는 정적(靜的) 운동이다. 그래서 특별히 운동능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바로 배울 수 있다. 보통 팔힘이 매우 강해야 가파른 암벽에서 몸을 잘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암벽등반은 팔힘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다리의 힘으로 일어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턱걸이를 한개도 못한다. 제법 수준높은 암벽등반을 즐기는 여성등반가도 마찬가지다. 힘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란 것은 증명되었다.

모든 스포츠는 수준별로 즐길 수 있듯이, 암벽등반도 나이, 체력 그리고 성별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올바른 기초기술을 익히고, 안전에 필요한 적절한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헬멧, 안전벨트, 암벽화, 로프, 카라비너 등을 구입하는 데는 제법 돈이 들기도 하지만, 대여해 주는 곳도 있고, 적극적인 태도만 보이면 중고를 얻을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누구에게 배우고, 누구와 함께 암벽등반할 것인가?’.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안전하고 올바른 기초기술을 배우지 않은 채, 편법과 요령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등반사고는 이런 사람들이 주로 일으킨다. 아이러니하게 이들은 초보자에게 대단한 실력자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이 뛰어나다.

암벽등반을 배우는 방법은 전문등반을 하는 클럽이나 산악회에 가입하거나 등산학교에서 배우는 방법이 있다. 이런 곳들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도 있지만, 신뢰할 수 있는 곳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대한산악연맹이나 전국 시도 산악연맹 등에 문의를 하고 추천받는 것이 좋다.

높은 곳에 대한 공포심, 그리고 추락의 두려움을 냉정한 판단력과 용기로 극복하고, 자신이 지닌 심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거친 암벽을 오를 때, 우리의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란 호르몬이 분비된다. 그리하여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자세로 돌파하고 올라서면, 엔돌핀이라는 행복의 호르몬이 분비되고 가슴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며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성취감에 도취될 때, 새들은 발아래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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