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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차라쿠사 드리피카 원정대 김형주 글

by 안그럴것같은 2021.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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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피카 북릉 

2005 차라쿠사 드리피카 원정대 

김 형주 글. 사진

 

원정대명 : 2005년 차라쿠사 드리피카 원정대(Charakusa Drifika Exp.)

원정기간 : 2005.7.3 ~ 8.9(38일간)

등반대원 : 이 용대(총대장), 윤 재학(부대장), 김 형주(등반대장), 송 석원, 손 재식,

이 종욱, 고 미영, 류정병( 8)

 

등반목적 및 성과 : 등반기량 향상 및 경험축척

초경량 장비에 의한 속도 등반

고산에서의 거벽등반

국내 최초 차라쿠사 계곡의 미답봉 및 부근 거벽 대상지 자료수집

 

 

 

 

 

운행 일정

일 자 운 행 수송편 소요시간 비 고
7.3~4 인천공항~방콕경유~파키스탄 라호르공항
~이슬라마바드~관광성 브리핑
항공기    
7.5 이슬라마바드~칠라스 렌트 버스 13:00  
7.6 칠라스~스카르두 렌트 버스 09:00  
7.7 스카르두~카프루~칸테~후세 Jeep 08:00 칸테에서차량교체
7.8 후세(3,060m)~사이초 캠프(3,270m) 카라반 도보 06:00  
7.9 사이초~안캄 캠프(4,025m)   06:30  
7.10 안캄 ~ 베이스캠프(4,235m)   07:30  
7.11 네이저 피크 정찰(5,200m)   04:00  
7.12 ABC(4,500m)설치, 네이저 피크 등반      
7.13~18 기상 악화로 B.C.에서 대기
부근 거벽등반 대상지 정찰 및 자료수집
     
7.19 B.C. ~ ABC ~ C1 직전 간이캠프   08:30  
7.20 C1건설(5,350m)   04:00  
7.21 C2건설(5,800m)   04:00  
7.22 Camp 2 ~ 정상
Camp 2 귀환
  13:00
04:00
 
7.23 Camp 1   03:00  
7.24 B.C.귀환   08:00  
7.25.~7.27 ABC물자 철수      
7.28 네이저 피크 등반 재시도      
7. 31 B.C. 철수 하행 카라반 ~ 사이초~후세   10:40  
8.1 ~8.4 훈자지역 답사, 라카포시, 울타르피크,
파수피크(Pasu Peak 7,284m)
     
8.5~8.7 훈자~길기트~칠라스~이슬라마바드
관광성 브리핑
     
8.8 ~8.9 이슬라마바드~라호르~방콕~인천공항      

 

 

 

원정 개요

 

코오롱 등산학교 개교 2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등산학교 강사들로 구성된 이번

원정대는 그동안 같이 호흡을 맞추어 가며 학생들을 지도하며 얻은 축척된 경험과

제각기 열심히 등반을 하며 기량을 연마한 강사들로 구성 올 4월 정규반 41기 교육시작과 함께 시작된 이번 원정계획은 그야말로 분주한 시간 속에서 틈틈이 시간을 할애하여 계획수립을 하여야 했으며 약 1달간의 제한적인 등반기간 속에서 우리들이 추구하는 최적의 대상지를 선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였다.

초기에는 유럽 알프스원정도 생각해보았으나 6000미터 급의 가치 있는 고소등반을

하자는 의견들 속에서 훈자지역의 레이디스 핑거 등반과 기타 다른 지역의 거벽등반도

생각해보았고 또 다른 암. 빙설 벽이 혼합 된 대상지를 찾고자 매일저녁 인터넷을 서핑하며 자료를 수집한 결과 파키스탄 차라쿠사 계곡에 위치한 드리피카(Drifika 6,447m)피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그 주위에 있는 5000미터급 거벽을 병행 등반한다는 의견에 모두들 동의하였다. 그야말로 "드리피카"라는 이름만 가지고 시작된 원정이였다.

 

대상지에 대한 국내의 자료가 전혀 없이 원정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은 무모한 것

같았으나 국내에서는 전혀 탐사가 되지 않은 새로운 지역에서의 등반이라는

호기심과 아울러 순수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신선함이 덧없이 즐거운 등반을 기대하게 되었다.

 

히말라야 고산 등정주의에서 탈피한 등로주의 제창은 어쩌면 우리들에게는 필연적인 변천과정이며 이미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인 등반의 조류로 이미 국내의 몇몇 최상의 등반가들에 의해서 얼마 전부터 편승되기 시작 되었다.

차라쿠사 지역은 1998년도부터 유럽의 전위적인 등반가들에 의하여 세상에 알려 지면서

발토로빙하 지역의 트랑고 타워등과 같이 고산에서의 거벽등반의 최적 대상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이지역의 7,000미터급 봉우리 중 아직까지 등정이 되지 않은 유명한 K6(7,281m)를 비롯하여 수직의 암탑들로 구성된 K7(6,934m), 암빙설벽으로 혼합된

카푸라(Kapura 6,544m), Link Sar(7,041m)등과 비교적 단단한 암질로 구성된 거벽 등반 대상지인 Nayser Brakk( 5,200m), Namika(6,325m) Dog's knob(5,300m),Fathi Brakk(5,600m) 5000~6000미터급의 수직벽들이 수많이 산재하고 있는그야말로 거벽등반가들의 파라다이스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이곳은 최근부터 개척등반이시작되기 시작하면서 아직까지도 등정이 되지 않은 수많은 미답봉들이 클라이머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 우리들이 등반한 드리피카는 이곳지역에서의 알파인 등반의

맹주라 할 수 있는 날카로운 삼각형 형태의 설벽으로 형성된 봉우리로 1978 817일 일본의 Akya Ishimura 에 의해 북릉으로 초등되었으며 수직벽인 북벽과 남서릉 등의 등반루트가 있다. 1984 450개의 볼트와 6,500미터의 고정로프를 가지고 수많은 시일을 소요하면서초등했던 K7 벽은 가히 짐작할 정도의 수직벽으로 수많은 암탑(Pillar)들로 형성되어 있어엄청난 신 루트를 개척할 수 있는 암벽 등반가들의 천국이다. 일찍이 등로주의를 제창했던일부 전위적인 일본의 등반가들은 1978년부터 드리피카 초등을 비롯하여 K7,나미카(Namika)등을 초등을 하였다니 실로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히말라야 고산등정을 위한 고봉피크 헌팅시대의 시작점을 감안해보면 격세지감을 아니느낄 수 없다.

이제 우리 산악계도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어서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네팔 쪽의 고산등반 보다는 파키스탄의 난이도를 추구하는 거벽등반의 시대가 서서히 열렸다.

이번 우리원정대의 시기와 비슷하게 이루어진 또 다른 국내의 파키스탄 원정대들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사료된다. 낭가파르밧의 루팔벽 메스너 루트 재등과 코오롱 등산학교 강사들이 다소 포함된 김형일, 장기헌 강사 등의 트랑고 타워에서의 신 루트 개척등반, 이민호 강사가 포함된 대학산악연맹의 트랑고 타워의 2개의 루트등반 성공, 김재수의 쉽튼스파이어 등반 경기산악연맹의 가셔브롬 1.2봉의 등정 성공 소식들은 이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건대 이번에 우리들이 등반한 차라쿠사 지역의 수많은 대상지들은

앞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훌륭한 등반성과가 나오리라 자못 기대해 본다.

 

 

 

 

 

 

등반기

 

73일 코오롱 Fnc 관계자들과 많은 등산학교 졸업생들이 우리들을 환송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집결 우리의 장도를 격려해준다. 이러한 융숭한 환송식에 한편으로는

다소 마음에 부담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좋은 등반성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는 의지를 불태워 보지만 여느 원정대와는 다르게 연령층이 높은 우리 강사팀들의

체력적인 측면을 고려해보면 은근히 걱정이 된다

코오롱스포츠의 고객들을 위한 곤도고라 원정대와 병행된 이번 원정대는 차라쿠사지역 원정대원 8명과 곤도고라

원정대 10명으로 이루어진 총 18명의 코오롱스포츠 원정대와 김 형일, 장 기헌 강사들의

트랑고 타워 신루트 개척 원정대, 이 민호강사 등 대학산악연맹의 또 다른 트랑고 타워 원정대 등 모두 32명이 같은 항공으로 탑승을 하였다. 갈 길이 머나 먼 우리 원정대들의 첫 번째 곤란함은 인천공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소홀한 준비관계로 원정대의 장비 및 식량의 중량을 정확히 체크 못한 대가로 우리들은 항공화물 초과중량으로 인해 거금을 지출하게 되었다.

방콕 공항에서 약 6시간 이상의 지루한 시간을 대기하고 환승을 하고 파키스탄 라호르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자정이 30분 못 미친 11 30분이였다. 올해 유난히 덥다는 파키스탄에 입국하니 정말 엄청나게 덥다. 대부분의 원정대들은 파키스탄 항공 또는 다른 항공기를

이용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로 직접 입국하는데 우리는 항공화물 운송비를 보다 절약하고자 라호르 공항을 이용해 보았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오히려 손실만 가져오게 되었다. 라호르에서 이슬라마바드까지 렌트 버스를 이용 4일 새벽 6시경이나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하게 되었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파키스탄 관광성에 방문 원정대 브리핑을

하였다. 75일 오전 일찍 이슬라마바드를 출발 그 악명 높은 카라코람 하이웨이를렌트 버스를 이용 찜통의 더위 속에서 13시간을 달린 후 낭가 파르밧 등반기점인 칠라스 마을(Chilas)에 도착 호텔에서 숙박을 했다. 칠라스는 필자와는 인연이 깊은 곳이다. 88,91년 낭가파르밧 등반 때 이곳에서 머무는 적이 있어 감회가 새롭다.

 

카라코람의 등반기점이라 할 수 있는 등반도시인 스카루드(Skardu 2,340m)에 도착한 후 여장을 풀었다.

등반에 사용할 로프와 스노우 바, 가스 등과 채소류를 구입하고 이곳부터 사용될

지프차로 환승한다. 우리나라 70년대에서나 사용했던 구식 지프차로 험난한 산길을

 10시간 달린 후 본격적인 카라반 시작점인 후세마을(Hushe 3,060m) 7 7일에 도착하였다. 73일 오전 1015분 출국 카라반 기점인 이곳까지 5일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대원들의 고소 적응 및 체력상태가 좋지 않은 듯 하다. 상행카라반을 위해 53명의 포터들을 고용 사이초(Sayescho 3,270m), 안캄(Ankam / Spansar 4,025m)을 거쳐 23일간의 카라반 후 7 11일 드디어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이곳은 맑은 시내물이 흐르고 곳곳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피어있는 최적의 베이스캠프 장소이다. 드리피카 등반은 물론 가깝게 바라보이는 K6, K7 등반을 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B.C.를 설치하여야 한다.

우리보다 약 2주전 먼저 도착해 등반을 하고 있다는 독일원정대는 우리의 B.C.보다 약 20여분 위에 캠프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주변의 깍아 지른 수직의 암탑들과 암 빙설로

뒤 덮힌 K6 산군의 위용이 마치 알프스지역을 2배로 확대시킨 듯 하다우리가 오르고자 하는 드리피카는 이곳 베이스에서는 보이질 않는다. 베이스캠프를

가로질러 형성된 차라쿠사 빙하를 건너 올라야만 볼 수 있다.

 

 

 

 

 

바로 앞에 우뚝 솟은 삼각뿔 형태의 날카롭게 솟은 침봉 네이저 피크

(Nayser Brakk 5,200m)는 벽 등반을 좋아하는 우리들의 가슴을 설 레이게 한다.

주변에 산재한 수많은 이름 모를 침봉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뿌듯한 포만감을 느낀다. 독일원정대를 방문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고 이곳의 기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독일의 각 지역에서 모집하여 약 2년간 훈련을 한 이들은 모두 11명으로 우리나라 청소년 오지 탐험대와 비슷한 성격으로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알피니즘과 도전정신을 함양할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드리피카 등반과 네이저 피크, 주변의 여러 곳의 거벽대상지를 등반 할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고 한다. 작년에도 프랑스등반대가 이들과 비슷한 목적으로 이 지역의 5개의 대상지를 등반한 적이 있다. 독일, 이태리, 프랑스 등 유럽의 선진 산악문화를 가진 이들답게 어느 한 봉우리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다양한 등반체험을 하기위해 멀티피크 등반 계획을 한 것을 보고 우리들 모두 자성의 계기를 가졌다. 독일원정대 중에는 낭가파르밧 등정자도 있었으며 대부분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연령으로 우리들의 평균연령이 약 50대에 이른 것을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독일대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기상청으로부터 매일 이곳 차라쿠사지역의 기후변화를

인공위성으로 줌 인하여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위성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알려 준다고 했다. 따라서 그들은 이곳의 기후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이들은 드리피카 등반을 위해 이미 캠프-2를 설치하고 정상등반을 시도해보았지만 루트 파인딩의 오류로 실패하고 현재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베이스 도착 후 고소 적응 차 네이저 피크 정찰을 위해 이용대 대장, 윤재학, 송석원, 필자가 간단한 장비를 착용 등반을 시도해 보았다.. 네이저 피크를 오르는 설벽를 올라 보니 비교적 완만한 경사도와 설질이 좋아 보인다.  500여미터 가량 오르다가 하산. 베이스로 내려왔다. 712일 필자와 송 석원 강사, 고소포터1명과 함께 ABC를 설치하기 위해 베이스캠프를 출발하고 윤 재학, 이 종욱, 고 미영대원들이 네이저피크를 등반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그 전날 임시 ABC에 이미 이중화, 크램폰, 하네스 등 등반에 필요한 모든 장비들을 데포 시킨 상태라 유일하게 등반장비를 소지한 윤 재학 강사가 네이저 피크를 선등하기로 하고 이 종욱, 고 미영등이 릿지화를 착용한 채 크램폰도 없이 네이저 피크의 꿀르와르를올라 본격적인 암벽지대에서는 서로 바꾸어 등반한다는 계획아래 등반을 시작하였다.

 

한편 ABC설치로 차라쿠사빙하를 건너 오르던 우리는 맞은편의 네이저 피크를 바라보니

전날 우리들이 정찰하고 판단했던 설벽이 500미터가 아닌 약 1200미터 정도로 상부에도 계속적으로 연결되었음을 발견 무전을 통해 네이저 피크 등반 대원에게 알려 주었으나

제일 밑에서 등반하던 이 종욱 강사만 무전기를 소지하고 있던 터라 대원들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선등자인 윤재학 강사는 계속해서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쪽 팀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우리들은 ABC를 새로 설치하고 물자수송을 위해 정리하고 하산을 시작하였다. 하산 중 네이저 피크 등반 팀을 관찰해보니 벌써 4시가 넘은 상태인데

 

아직도 암벽안부에 도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윽고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니 세찬 폭우와 함께 뇌성이 메아리쳐 오고 아무래도 급변하는 기상의 변화가 심상치 않았다. 이용대 대장을 위시 송석원, 손재식, 필자등이 지원조로 편성 네이저 피크 설벽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세찬 폭우와 장시간 설벽에서 대기 중 이던 이 종욱, 고 미영대원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다행히 오랜 등반경험이 축척된 강사들의 임기응변으로 아무 사고 없이 하산을 할 수 있었지만 이번 일은 우리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고산등반에서의 신중함을 각성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바탕의 에피소드가 끝난 후 좀처럼 날씨가 호전되질 않는다.

 

 1주일간 매일 비가 내린다. 그동안 스위스 원정대가 K7 벽 등반을 위해 이곳에 도착하였고 몇해 전 까지 월드컵 스포츠클라이밍 챔피언을 지낸 대원이 주축이 된 이태리등반대가 초고리자 지역의 거벽에 새로운 신 루트를 개척하고 이곳에 도착하였다.

설상가상으로 고소식량이 부족해서 우리들은 오랫동안 고소캠프에서 체류할 형편이 되질

않아서 속공등반을 감행하기로 다시 계획을 수립했다. 손 재식, 류 정병대원은 곧 등반을 끝내고 올 곤도고로 팀과 합류해서 조기 귀국한다고 하니 이제 이곳에서 등반할 실제적인 인원은 6명만 남게 되는 셈이다.

716일 기 설치된 ABC의 파손여부 상태를 재확인하기위해 필자를 비롯 이 종욱,고 미영, 손 재식 등이 베이스 캠프를 출발 ABC에 도착하니 다행히도 그동안 많은 눈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양호하다. 이날 저녁 조기 귀국 때문에 손 재식, 류 정병대원 등이 먼저

오를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겠다고 주장 약간의 마찰이 있었으나 먼저 올려 보내기로

결정했다.

 

 

 

 

 

717일 손 재식, 류 정병과 고소포터2명이 함께 C1 설치 차 먼저 베이스 캠프를 출발ABC에서 1박 후 C1 설치작업을 착수했으나 류 정병 대원으로 고소증세 악화로 계획을 변경하여 필자와 송 석원, 이 종욱, 고미영등이 먼저 C1에 오른 후 전번적인 재검토를 한 후 나머지 대원들이 후속으로 오르는 것으로 결정하고 719일 이용대 대장을 비롯 전대원들과 곤도고로에서 도착 합류한 원 종민 대원 등이 함께 ABC에 도착 고소장비 및 식량 등을 재정리하고 필자, 윤 재학, 송 석원, 이 종욱, 고 미영 등이 캠프-1으로 진출하기 위해 오른다

ABC에서 캠프-1으로 오르는 루트는 엄청나게 발달된 수많은 크래버스로 인해 부득이하게 암벽지대에 고정로프를 설치하고 횡단하여 올라야만 하므로 대단한 체력소모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먼저 올라간 손 재식 대원과 고소포터가 등반에 필요한 장비와 식량을 수송하지 않았던 관계로 적은 인원으로 한 번에 모든 물자를 수송하자니 힘겹기만 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손 재식 대원과 동행한 고소포터 2명은 자신의 짐조차 제대로 질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원래 이번등반에서 고소포터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높은연령과 대원 부족으로 인해 고소포터 2명을 사용하였으나 네팔의 셀파나 고소포터와는 달리 고소등반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등반 장비 역시 대단히 열악하여 당초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크래버스를 피해가는 루트 파인딩이 대단히 곤란하여 많은 시간이 허비된 관계로 캠프-1 직전에서 비박을 하가로 하고 1개의 소형 텐트를 임시로 가설하였다. 그다음날인 720일 드리피카가 한눈에 보이는 설원지대에 캠프-1을 새로 설치했다. 먼저 올라와 대기 중이던 손재식대원이 설치한 캠프-1 장소는 캠프-2로 진출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철수하고 새로 이동하였다. 드리피카 우측에 있는 미답봉 2개가 시선을 끈다.  6000미터 정도의 이 봉우리들은 드리피카를 호위하듯 멋진 자태를 자랑하며 위용을 부리고 있다. 특히 등반루트로 가능해 보이는 설릉의 스카이라인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으며 불쑥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한다.

캠프-2로 이어지는 설능 사이로 노을 지는 황혼 빛이 붉으스레 새하얀 설릉과 조화되면서 영롱한 빛의 신비함을 창출해간다. 1차 등반조로 이 종욱, 고 미영대원이 캠프-2에서 1박을 하고 정상을 향해 출발하고 곧 캠프-1에 있는 3명이 뒤따라 올라가 1차 공격조는 캠프-1으로 하산하고 2차 공격조가 정상을 오른 후 캠프-2를 철수하고 곧바로 캠프-1으로 귀환한다는 계획을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721일 이 종욱, 고 미영 대원이 비교적 늦은 시간에 출발 캠프-2로 향한다.

캠프-2로 이어진 완만한 설릉을 올라서는 모습이 멀리서 보아도 무척 지친 상태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아래서 얼마나 기온이 상승되는지 정성적인 등반속도가 아닌 것 같다. 출발한지 약 2시간 후 이 종욱 대원이 무전을 통해 하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원정을 떠나올 때 이중화를 빌려 왔는데 너무 발을 죄어서 도저히 이 상태로는 오를 수 없다고 한다. 이 종욱 대원은 되돌아 내려오고 고미영 대원 혼자 계속 오른다. 할 수없이 당초의 계획을 변경 필자와 고미영대원이 먼저 정상에 오르고 다시 바꾸어서 2차적으로 나머지 대원들이 정상에 오르기로 하고 필자가 준비를 해서 고미영 대원 뒤를 부리나케 따라 올라 간다

 

캠프-2 직하 약 10여 미터의 경사도가 급한 암벽하부에서 고 미영대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합류하여 올라가서 캠프-2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하루 먼저 올라 온 독일대가 설치한 텐트2동만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오늘 새벽에 정상을 향해 올라갔으리라. 4시경이 되어서 고소포터와 함께 정상을 향했던 손 재식대원이 지친 몸으로 캠프-2에 도착한다. 독일대를 따라서 올라가다가 독일대가 정상부근 암벽지대에서 고투를 하는 것을 보고 포기하고 내려왔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정상을 가는 루트는 설릉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쪽의 가파른 설벽을 횡단하여야만 되기 때문에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손 재식 대원과 고소포터는 캠프-1으로 하산을 하고 우리 2명은 독일대가 하산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어둠이 깃들어도 내려오질 않는다.

 

캠프-2 우측 발토로 빙하 방향으로 마셔브롬, 초고리자, K2가 희미하게 보이고

좌측으로는 아민브락의 산군들이 우뚝 솟아 있으며 우리가 올라온 방향으로는

K7의 침봉들이, 바로 앞에 K6, 카푸라 에 걸쳐 있는 설벽들이 눈을 현란하게 한다.

마치 지금 알프스에서 등반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사방이 날카로운 침봉과 우뚝 솟은 암탑들로 둘러 싸여 이제 서서히 그 자태를 어둠에 실루엣을 그리며 묻혀간다.

 

멀리 헤드램프의 불빛이 반짝이며 외치는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아마 독일대가 하산하는 중이리라. 아주 늦은 시각인 오후 11 30분가량이 되어서야 독일대 4명이 정상등정에 성공하고 캠프-2에 도착했다. 모두들 기진맥진한 상태이다. 새벽 4시에 캠프-2를 출발 12시간 걸려 정상에 도달 지금 이곳에 도착하였다고 하며 자기들이 생각한 것보다 모든 구간들이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총 등반시간이 19시간이 걸렸다는데 나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동안 내가 관찰해보건대 독일 원정 대원들은 나이도 어리고 체력도 대단하다고 느껴졌었다. 우리가 6시간 걸려 올라갔었던 네이저 피크의 설벽을 그들은 불과 3시간정도에 올라갈 정도의 막강한 체력의 소유자들이 19시간 동안 사투를 벌렸다고 하니 낙담이 되었다. 또한 그들은 모레부터는 날씨가 나빠지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의 기다림은 없었다. 곧 지금 올라가느냐 아니면 캠프-1으로 내일 일찍 내려가서 날씨가 호전되면 또 다시 올라오느냐 하는 고민 속에 빠졌다. 현재의 우리들이 가진 부족한 고소식량과 장기간 이곳 캠프에서 대기한다면 오히려 체력이 저하된다고 판단되어 속전속결로 정상에 오른 후 빠른 시간에 하산을 하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되었다. 서둘러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필요한 장비를 준비한 후 22일 새벽 2시에 캠프-2를 출발 정상을 향해 어둠속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설릉을 오르기 위해 가파른 경사의 설벽을 오르니 정말 독일대가 왜 악전고투를 했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가 밑에서 바라본 설릉은 커니스를 형성하고 있어서 밟으면 금방 무너질 정도로 상태가 불량해 보였고 캠프-1에서 바라보던 드리피카 전면의 수직에 가까운 설벽이 후면에도 비슷한 형태로 형성되어 있어서 결국은 이 가파른 설벽을 횡단하면서 올라야만 했다. 독일등반대가 얼마 전 1차 정상 공격 때 루트 파인딩을 잘못해 다시 내려 왔다는 것에 대해 십분 이해 할 수 있었다.

 

8.2mm 굵기의 60m 길이의 로프로 안자일렌한 후 내가 앞에서 먼저 오른 후 비교적 위험이 덜한 곳에서는 동시에 안자일렌한 채 연등을 하고 어려운 구간에는 서로를 확보를 하거나 로프를 고정하고 쥬마링을 하는 시스템으로 되도록 신속하게 등반을 하였다.

 

고 미영대원은 역시 프로답게 모든 등반을 신중하고 안전하게 행동을 하였으며 체력적으로도 아주 우수한 상태였다. 대부분의 스포츠 클라이머들이 고산등반에서 약세를 보이는 것은 하체의 근육 문제와 심폐기능 저하인데 고미영대원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약세적인 요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필자도 꽤 많은 체력이 우수한 등반가들과 고산등반을 하여 보았으나 고 미영대원 처럼 고소적응이 빠르고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는 정말 드문 경우라 생각된다.  4시간정도 쉬지 않고 올라가니 정상부근의 암벽지대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멀리서 보아도 만만한 경사가 아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최대한 중량을 줄이기 위해 이곳부터는 오직 빈 배낭에 촬영에 필요한 카메라와 보온병1개만 가져가기로 하고 나머지는 고미영대원의 배낭에 넣고 이곳에다 두고 가기로 했다. 베이스 캠프 부터 한번도 고소적응을 위해 내려가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오르기만 했던 우리들에게 이제 서서히 고소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전날 전혀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새벽 2시부터 강행한 우리들은

피곤함이 극도로 몰려와서 확보를 보면서도 잠깐씩 조는 등 사태가 매우 심각했었다.

올라가면 갈수록 정상은 더욱 더 멀어지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다급함에 쫒기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오르기를 번복하다 보니 드디어 정상부근의 암벽지대에 도달할 수 있었다.

 

 200여 미터의 암벽지대는 단단한 설 사면과 박빙으로 덮혀 있어서 그 곤란함은 한층 더했다. 부분적으로 암벽지대에 78년 일본대가 사용한 듯 한 오래된 고정로프가 간헐적으로 끊어지다 이어지곤 하여 루트 파인딩을 하기에는 수월했다. 오후 1 53분 정상직하의 수직의 암벽지대에 도착하니 바로 전 올랐던 독일대가 확보용으로 설치해놓은 약 4호 정도 크기의 잼 너트를 암벽크랙에 끼어 놓고 오래된 록 하켄과 5밀리 슬링에 연결한 확보지점을 발견 이곳에서 로프를 고정시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습관적으로 아이스바일 피크로 크랙에 끼어 있는 잼 너트를 더욱 더 깊숙이 박아 놓고 아이스 바일 피크로 크랙에 끼어 넣어 확보물을 보강하였다. 이곳 암벽 지대는 약70도 정도의가파른 경사도와 박빙과 단단한 설빙으로 형성되어 있기에 쉴 곳도 없이 연속적으로 프론트 포인팅을 하였으므로 나 역시 상당히 지쳐 있었다.

 

잠시 후 고 미영 대원이 약 57미터 정도 올라와서 이제는 다 왔구나 하는 찰라에 갑자기 "" 하는 급작스런 비명과 함께 까마득한 허공으로 추락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눈앞의 현실을 받아 드리기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였고 앞이 깜깜할 뿐 속수 무책로 그저 멍하니 밑으로 추락하는 새까만 물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때마침 이 용대 대장의 무전교신 소리가 들려와 정신을 차렸다.."정상조 ..정상에 도착했는가? "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 미영이가 추락했습니다." 상대방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순간이 너무나도 길다고 생각했다. 착용했던 고글이 뿌옇게 김이 서려 밑의 상황을 볼 수가 없었다.

 

 

 

 

 

 1,500미터 밑의 설원지대가 멀리 보인다. 여기서 추락했다면 아마도 저 멀리 까마득한 설원 어딘가에 뒹굴고 있을 고 미영 대원을 생각하니 참담하기만 하였다. 아직도 "" 소리 내며 떨어져 내려가는 고미영대원의 모습이 윙윙거리며 마치 주마등처럼 계속적으로 되돌고만 있다. 고글을 벗어 밑을 보니 아주 작은 물체가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미영야.. 미영야.." 목이 터지도록 외쳐본다. 잠시 고 미영 대원의 대답이 메아리쳐온다

"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쥬마링 해볼께요" 곧바로 베이스캠프와 교신 이 용대 대장에게 미영이가 무사함을 알리고는 나 스스로 고민에 빠졌다. 바로 암벽부분 약 15미터 정도만 오르면 정상인데....미영이가 올라오는 대로 여기서 하산을 해도 전혀 미련이 없었다.

정상의 기준은 우리 등반자 스스로 내리는 가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15미터 밑에서 내려간들 오늘 우리가 등반한 모든 노력과 의지가 과연 희석 될 것인가?

 

최선을 다했고 우리의 마음속의 정상이 여기라고 인정된다면 후회 없이 내려가야지 하는 상념 속에 빠져 있을 때 고 미영 대원은 어느새 올라와 버렸다. 정말 프로기질의 대담한 담력과 정신력을 가진 천부적인 알피니스트라 생각되었다. 고 미영 대원은 허리에 통증이 있으나 참을 만 하다고 한다. 다행히도 고 미영대원이 메고 있던 배낭이 많은 충격을 흡수해준 것 같았다. 정상으로 이어진 암벽은 전혀 눈이 붙어 있지 않은 직벽으로 횡 크랙이 발달되어 있었다. 다른 곳을 선택하고자 했으나 너무 돌아서 올라가거나 마지막 부분이 오우버행으로 이루어진 커니스라 할 수 없이 이 암벽을 올라야만 했다. 아무런 확보물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으며 우리들 역시 암벽에서 사용해야 할 너트나 캠 등 확보물을 전혀 소지하지 않았다. 오직 아이스바일 2개와 크램폰으로 비비 적 거리며 이 구간을 돌파하여야만 했다.

 

정상에 오르자 양면이 아주 가파른 설릉으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말 잔등에 올라타듯 걸터앉은 채로 먼저 올랐던 독일대가 반대쪽사면에 아이스 피톤으로 설치해서 슬링으로 연결해 놓은 확보물에 자기 확보를 한 후 고 미영 대원을 확보하면서 아득히 바라보이는 주변 광경을 넋을 잃고 보고 있다 보니 곧 고미영대원이 정상에 도착 서로 마주 앉은 상태에서 카메라를 꺼내 서로의 사진을 촬영하였다. 다행히 고미영 대원과 함께 추락 했던 배낭 속에 넣어 두었던 디지털 카메라가 작동이 된다. 새벽 2시에 캠프-2를 출발한지 꼭 11시간만인 오후 3 8분에 드디어 정상에 도달하였다. 베이스캠프에 있는 이용대 대장에게 정상에 도달했음을 보고하고 정상도달의 기쁨도 뒤로 하고 급변하는 날씨로 인해 신속히 하강을 서둘러야만 했었다. 정상부의 암벽지대를 로프를 이용 하강하고 위험한 부분을 안자일렌하면서 통과 한 후 보다 신속한 하산을 위해 로프도 버리고 각자 안전하게 내려가기로 했다.

 

고 미영 대원은 추락하면서 고글을 떨어트렸고 나 역시 고글과 장갑을 실수로 떨어트렸기 때문에 신속하게 내려 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일일이 로프를 이용한 하강을 할 수없는 것은 하강용 확보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캠프-2에 도착하니 725. 정상에서 출발한지 약 4시간20분 정도 소요된 아주 신속한 하산이였다. 캠프2에 도착해 우리들의 하산을 걱정해 주던 윤재학, 이종욱, 송석원 대원들이 이것 저것 챙겨준다.

 

독일대가 정상등정 후 하산에 소요된 시간이 7시간 걸린 것은 아마도 그들은 안전을 위해 일일이 로프를 이용한 확보와 하강을 한 것 같았다.  1시간 후 고미영대원도 캠프-2에 안전하게 도착 우리 둘은 거의 탈진상태로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독일대가 이야기한 것처럼 날씨가 악화되기 시작한다. 다음날 캠프-2에게 2차 정상등반을 위해 올라 와 있던 대원들이 기상이 좋지 않은 관계로 정상 등정을 포기 우리와 같이 철수하기로 하여 캠프-2를 철수 캠프-1 으로 모두들 내려왔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더니 하루 종일 눈보라가 친다..

 

이 용대 대장을 비롯한 전 대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이들의 헌신적인

지원과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들은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들 충분히 정상에 올라갈 체력과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성공을 위해 우리에게 양보를 하여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며 아울러 이번 원정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코오롱스포츠 임직원 여러분들께도 고마움을 표한다.

 

 

 

 

 

 

차라쿠사 지역의 등반 대상지 정보

봉우리 명 고 도 루트 명 난이도 / 등반길이 비 고
Nayser Brakk 5,200m England route 1988   david Hamilton
Tasty Talk 2004 5.10+ 500m House,Prezlji
No more tasty talking 5.10+ 1000m Prezlji Miller
Fathi Brakk 5,600m Italy 98 west-northwest V+ 5.10d A3 mixed, 900m  
Northface   Chin-Robbins
Hajji Brakk 5,985m Northcouloir 2003 5.9 Steve House solo
Parhat Brakk   Tavis Ridge VI,5.11A3, 850m  
Namika 6,325m   D, 1400m  
Dog's Knob 5,400m Andrea Son 5.10d A1, 200m  
France ED  
England V+ 6+ A1 250m  
Italy V 5.10d, 250m  
Beatrice Tower 5,950m Sudwand 98 800m  
Ami Tour VI,5.10+ A3 800m  
Farol 6,370m France Sudkante TD, 1400m  
Spansar Brakk   Peter Croft 5.11a  
Minka Peak 5,800m W-face / N-ridge 400m(250m ice,150mrock)  
Pic Caro 5,700m NW-face 400m  
Kapura 6,544m West couloir    
West flank AD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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