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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를 향한 영국의 도전 (1)

by 안그럴것같은 2022.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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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어빈, 오른쪽이 말로리

 


 

에베레스트를 향한 영국의 도전 (1)

  

 

영국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에 역사적인 첫 탐색대를 파견한 것은 1921년이며, 영국의 에베레스트 도전 32년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1차 탐색대는 하워드 버리 대령이 4명의 대원들과 함께 현지로 출발한다. 이들은 인도 다질링에서 150km 거리의 에베레스트를 향해 미지의 머나먼 길을 찾아 500km를 우회한다. 첫 탐색대의 주 임무는 정상으로 오르는 루트를 찾는 것이었다. 대원 중에는 유명한 조지 말로리도 참가하였으며, 그는 30km에 달하는 빙하로 들어가 롱북빙하라고 명명한다. 이 탐색대는 동쪽 라파크 고개 넘어 북릉 안부에서 정상에 이르는 노스콜 루트를 발견한다. 훗날 에베레스트 등반 루트가 된 아이스폴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조지 말로리다. 이것은 4개월에 거친 첫 정찰대가 얻은 소득이다.

1922년 브루스 장군이 이끄는 영국의 제2차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노스콜 사면위 안부에 4캠프를 설치하여 전진기지로 활용한다. 첫 공격은 말로리, 노튼, 소머벨 등 세 사람이 무산소로 8,225m까지 진출한다. 인류가 산소호흡기 없이 8,000미터 선을 넘은 최초의 기록이다. 두 번째 공격에서 핀치는 그가 고안한 산소호흡기를 사용하여 브루스와 함께 악천후 속에서 정상 800m를 남겨둔 8,326m까지 진출하였지만, 7명의 셀파가 눈사태로 조난당하면서 철수하게 된다.

1924년 노튼을 대장으로 한 영국의 제3차 에베레스트 원정은 등반사에 많은 일화를 남기게 되는데, 정예대원인 말로리와 어빈이 정상을 향하던 중 실종되는 비극으로 유명하다. 원정을 떠나기 전, 말로리는 왜 산에 가느냐 라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Because it is there)'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채 8,500m 지점에서 의문의 실종으로 사라져 갔다. 그 후 말로리와 어빈의 실종은 하나의 전설이 되어 그들의 세계 최고봉을 초등여부에 대한 의문은 화제로 남게 되었다.

3차원정대는 말로리와 어빈을 잃고 두 명의 포터가 동상과 폐렴으로 목숨을 잃는 참사가 있었으나, 죽음의 지대에 고립된 셀파를 구출하는 미담을 남겼다. 또한 용맹한 셀파에게 수여되는 '타이거(Tiger)' 칭호의 계기도 마련한다.

원정대는 거센 폭풍설과 추위 때문에 시작부터 곤란에 직면한다. 4캠프를 설치했을 때 폭설이 내려 4명의 셀파가 탈출하지 못한 채 고립된다. 셀파들을 위해 위험지대에 투입된 노튼, 말로리, 소머벨 등은 필사적으로 이들을 구출한다. 이들은 정상공격을 준비 중인 가장 우수한 대원들로 등반초기에 체력을 비축해야 했지만 구출작전 때문에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

결국 노튼과 소머벨은 체력 약화로 정상 등정의 기회를 잃고 만다. 말로리와 브루스가 9명의 셀파와 함께 7,110m 고소에 5캠프를 세웠으나, 겁을 먹은 셀파들의 거부로 6캠프(8,170m)까지 전진이 어렵게 된다. 이때 노튼은 셀파들을 설득하여 6캠프에 짐을 올린다. 여기까지 올라온 4명의 용감한 셀파에게는 타이거라는 칭호를 준다. 이 일을 계기로 등반에 공헌한 헌신적이고 우수한 셀파들에게 호랑이 머리모양이 새겨진 타이거 배지를 달게 하는 타이거제도가 만들어져 셀파들에게 최고의 긍지를 갖게 했다. 배지에는 히말라얀클럽이라는 글씨와 뒷면에 셀파의 성명, 번호,발행 연도가 기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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