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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시민권

by 안그럴것같은 2022.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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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시민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명예, 사랑, 성취... 같은 것을 꼽을 수도 있겠지만, 한번쯤 크고 본질적인 것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의 가장 본질적인 구성요소는 시간과 공간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도 아직까지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것을 알게 되면 인간은 신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일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속에 존재하다가 사라져 가는데, 이 시간과 공간의 속박이나 자유는 우리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을 내서 산을 찾고, 새로운 수직의 공간인 산정을 오르는 것이 시간과 공간의 자유라고 얘기하면 지나친 의미의 비약인가?

인간에게는 확장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문학, 예술, 스포츠, 과학 등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이 경지를 확장하고자 한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공간을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사람은 탐험가이며, 수직으로 확장하는 사람은 등산가이다.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얼마나 확장하였는가에 따라 인생의 보람과 풍요 얻을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자아실현일 것이다.

산에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며 오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누구나 한번쯤 왜 산에 오르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쉽게 건강과 휴식의 목적을 떠올리지만, 보다 본질적인 답은 쉽게 얻을 수 없다. 왜 가는지 모른다는 얘기이다. 인간이 어떤 행위에 대한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이것을 본능이라고 한다. , 본능적으로 산을 찾고 있다는 말이다.

 

서양 사람들 중에는 등산이 문명 선진성의 척도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고 보면 등산을 하는 민족은 유럽, 북미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극동지역 일부 국가들이다.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등산을 하지 않는다. 이점에서 왜 산에 오르는가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의 유전인자 속에는 수백만 년 진화의 유산으로 여러 가지 능력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확장시켜라’, ‘자연의 혹독함을 극복하는 능력을 잃지 말고 계속 향상시켜라라는 유전신호가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산업혁명이후 선진국 사람들은 자연을 버리고 도시에서 고도의 물질문명과 편의성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도시문명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우리의 자연에 대한 적응과 극복 능력은 퇴화될 것이다. 산에 가는 사람은 그것을 잃지 않고 유지시키고 더욱 발달시키려는 유진신호 명령에 자기도 모르게 이끌리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도시문명화 되지 않은 후진국 사람들은 산에 가지 않는 것이 반증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연과 문명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이에 인간이 있고, 우리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자연과 문명 중에 하나를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있다. 어느 개인의 선택은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은 모아지고 시간이 흐르며 삶의 환경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21세기의 우리의 삶은 끝없는 안락의 추구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발전을 가속하는 문명의 혜택으로 우리는 쾌적한 집과 편리한 자동차로 직장으로 이동하고 주말이면 영화관을 가거나 신기한 컴퓨터와 가전제품과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다. 1년에 몇 번 산에 가거나 여행을 통해 자연을 찾기도 하지만, 그래도 도시생활의 편안함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문명 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진화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지닌 건장한 육체는 문명보다는 자연 속에 더 적합하다. 이 시대 우리 인간의 유전인자도 분명 친자연이냐 친문명이냐의 기로에 서 있을 것이다. 그 방향, 즉 후손에게 어떤 유전인자를 물려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나는 요즈음 이런 생각을 자주한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세대는 이 지구상에 다시 출현하지 않는 희귀종이라고. 40대중반을 넘어선 나는 어릴 적 전기가 없는 산골에서 살았다. 비누까지 돼지기름과 양잿물을 섞어서 만들어 사용하는 자급자족의 생활이었는데, 고조선 시대의 삶과 비교하여 크게 달라진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은 각종 문명의 이기와 전자장비 그리고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하며 살고 있다. , 삶 속에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고 있다. 40-50대를 기준으로 자연과 문명은 양분되는데, 이 또래는 양극을 모두 겪는 유일한 세대인 것이며 이들의 선택은 미래의 지구를 결정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등산가, 암벽등반가 그리고 빙벽등반가들은 우리의 먼 조상이 물려준 강인한 인간의 자연 적응력을 잃지 않고 유지시키는 파수꾼이다. 이들은 자꾸 도시문명 속에 길들여져 상실되어 가는 인간의 야성과 원시성을 험한 환경의 등반을 통해 유지하고 발달시켜 후손에게 물려준다. 그래서 이들의 등반활동은 개인적인 취미활동 이상의 가치가 있다. 간혹 각종 입산규제와 환경보호의 문제에서 인간성의 유지가 우선순위에 밀려서는 안된다.

 

수년전에 상영된 투머로우라는 미국영화는 지구환경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갑자기 빙하기가 찾아와 많은 사람이 무방비로 죽어 가는데, 기상이변을 예측한 연구원인 주인공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뉴욕에 고립된 아들과 일행을 구하고 마침내 지구상에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가 된다는 내용이다. 최근 유사한 자연재해가 실제 미국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그 주인공이 극한의 추위로 뒤 덥힌 뉴욕으로 가기 위해 갖춘 것은 바로 등산복과 등산장비이며, 난관을 극복할 때마다 등반기술을 사용한다.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미국시민권을 가지 대다수의 사람이 힘없이 죽어 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시의 시민권이 아니라 대자연 시민권(Wildness Citizenship)이다.

대자연 시민권을 가장 빠르게 획득하는 방법은 산에 가는 것이다. 등산은 자연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자연이 지닌 모든 혹독한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자연 시민권자의 전공필수과목은 등산이다.

 

지금의 개정판에는 빠졌지만, 세계적인 권위의 등산 지침서인 마운티니어링의 첫 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등산가는 산에서의 자유를 추구하는 자로, 대자연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이 대자연 시민권에는 특권과 보상도 있지만, 책임과 의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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