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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를 향한 영국의 도전 (2)

by 안그럴것같은 2022.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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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틸만


 

 

에베레스트를 향한 영국의 도전 (2)

 

영국의 에베레스트 3차 원정대는 핀치가 고안한 산소호흡기를 등반역사에 있어 처음으로 사용하여 8,326m까지 올랐지만, 당시에는 산소 사용이 등산의 페어플레이 정신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산소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공정한 수단이 될 수 없으며, 등산은 자기 체력만으로 어려움을 극복해야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등산의 순수론자들이 주장했다.

반면 산소호흡기를 고안해 낸 조지 핀치는 '인간의 지혜로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이점의 활용'을 역설하였고, 1953년 원정대의 존 헌트 대장은 "산소용구는 보다 높이 보다 빨리 오르기 위하여 최후에 필요한 체력을 비축해 줄 수 있는 이기(利器)' 라고 주장하면서 이것의 사용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1953년 에베레스트 초등 때 산소를 사용한 두 사람이 정상을 밟게 되니, 결국은 산소용구의 혜택을 톡톡히 누린 셈이다. 이후 8,000미터 고소에서 산소사용은 일반화되었으나 1978년 라인흘트 메스너와 피터 하벨러에 의해 에베레스트가 무산소로 등정되었다.

1933년에는 영국의 러트리지 대장이 이끄는 제4차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9년 만에 도전을 재개했지만, 8,572m 이상을 오르진 못했다. 원정이 9년 동안이나 중지되었던 이유는 티베트가 등반허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원정대는 3캠프와 4캠프에서 오늘날 주로 쓰는 돔형 텐트를 최초로 사용하여 그 기능의 우수함을 실증한다. 등반대의 일원이었던 스마이드는 돔형텐트가 허리케인과 갈은 격렬한 폭풍설 속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고 그 우수성을 격찬했다.

한편 이 원정대의 해리스와 웨쟈가 6캠프 위 8,229m에서 한 자루의 피켈과 산소 마스크를 발견한다. 이 장비는 1924 3차 원정시 의문의 실종을 한 말로리와 어빈이 남긴 유품이었다. 실종 9년 뒤에 발견한 피켈의 주인은 어빈인 것으로 확인된다. 그 후 미이라처럼 변한 말로리의 시신도 1999년 중국등반대에 의해 75년만에 신화처럼 발견된다.

1935년 영국의 제5차 에베레스트 원정은 에릭 쉽튼이 대장을 맡아 소규모원정대를 결성한다. 이들은 에베레스트주변에 있는6천 미터 높이의 봉우리 26개봉을 등정한 후 노스콜에 도달한다.

1936년 영국은 다시 러트리지가 지휘하는 제6차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파견한다. 26명의 대원과 23명의 셀파가 동원되었으며, 원정물자 수송은 300여 마리의 야크를 이용했다. 그러나 이 해에는 이례적으로 일찍 닥친 몬순기후의 영향으로 겨우 노스콜에 도달하는 것으로 원정을 마무리했다.

영국의 제7차원정은 1938년에 틸만을 대장으로 한6명의 소수 정예대원만을 파견한다. 그러나 이 해에도 몬순의 영향으로 적설량이 많아 8,320m에 도달한 후 철수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원정은 중단되었으며, 1950년 전쟁이 끝난 다음 히말라야 주변국의 정치적인 변화로 티베트가 중국 점령지가 되면서 입국이 어렵게 되자 에베레스트의 북쪽루트가 폐쇄된다. 그동안 영국은 북쪽을 통해서 17년 동안 에베레스트를 원정하였으며, 7차 원정대가 북쪽에서의 마지막 원정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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