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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노동자'의 추락

by 안그럴것같은 202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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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은 진정 무상(無償)의 행위인가. 여러 산악인이 ‘등반은 무보상의 행위’라는 이 말을 건드려서는 안 될 성구(聖句)로 떠받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등반 역사를 돌이켜보면 등반은 오로지 무상의 행위로서만 이루어져온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등반사의 주된 흐름은 유상(有償)의 법칙에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금전적 댓가만이 보상은 아니다. 등정자란 영예도 등반 행위에 대한 명백한 보상이며, 그 영예는 거의 금전적 댓가로 이어졌다. 한 번의 등정은 그 다음 원정의 등반비 후원사를 보장했고, 이러한 순환 고리에 의해 한국 산악사의 흐름은 이어져왔다.

‘우리가 오를 봉은 지고지난한 험봉’이라 포장한 무수한 원정 계획서들, 공항에서의 꽃다발, 언론 인터뷰, 정상에서의 후원사 깃발 사진 등은 그 명백한 증거들이다.

어디 한국뿐인가. 대표적인 예로, 에베레스트 초등정자 힐라리는 화려한 경(卿)의 칭호를 얻었다. 실은 등반은, 특히 거봉 등반은 무상 아닌 유상이라는 바탕 위에서 거의 모두 이루어져온 것이다.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하게 벽을 오르는 행위 그 자체만을 즐겨온 산악인들도 물론 있겠다. 생활비나 등반비를 버는 수단은 따로 있고, 등반은 그렇게 ‘등반은 무상의 행위’라는 나름의 금과옥조에 충실할 수 있는 그들은 행복한 산꾼이다.


그들 관점에서 보면, 등반비를 벌 별다른 수단이 없어서 등반을 곧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 사람은 불행하고 불쌍하다. 등반을 하기 싫지만, 먹고 살자니 어쩔 수 없이 가파른 벽을 목숨 걸고 올라야 하는 사람-그는 고고한 산악인이 아니라 ‘단순 등반 노동자’로 전락한 셈이다.


그러나, 보상을 바라고 오른다고 해서 곧 하기 싫은 등반을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니다. 보상은 보상대로 얻되 등반은 또 등반대로 즐길 줄 안다면 하등 비난받거나 동정 받을 이유가 없지 않나 싶다. 박지성이나 박찬호 같은 프로 선수들이 운동을 하는 댓가로서 보수를 받으므로 순수성을 완전히 상실한 축구 노동자라거나 야구 노역자라 비난할 수 없듯이.


그래도“등반은 무상의 행위로서 그 순수성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왜 그런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등반에서 우리가 얻는 가치는 무엇인가. 동료애, 저 산 아래 사람들에 대한 애정의 재확인, 불굴의 인간 의지 확산 등등이다. 유상의 행위로서 등반할 때 이중 무엇이 기필코 훼손된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진정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유상이냐 무상이냐가 아니라, 남의 과실(果實)을 제 것으로 가로채는 짓이 아닌가 싶다. 오르지 못했으면서도 등정했다는 거짓말 등은 프로 세계에선 용납되어선 안 된다. 그는 남이 누려야 할 영예와 부를 훔친 셈이므로.


근래 다시 엉뚱하게 화제가 되고 있는 허영호를 한 번 생각해본다. 95년 허영호가 3극점 원정 중 마지막 극점인 남극점 도보탐험 때 당시 그를 후원했던 언론사는 ‘세계 최초 3극점 시도’로 거듭 보도했다. 사전 정보수집이 치밀하다고 스스로 자랑해온 허영호가 오랫동안 원정을 준비하면서 그 1년여 전에 얼링 카게가 이미 3극점 도달 기록을 달성했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일까. 월간山 등을 통해 이런 사실이 여러 번 지적됐지만, 3년 뒤인 98년 강모라는 작가가 쓴 그의 자전적 기록인 <탐험가 허영호>에 또다시 ‘세계 최초로 3대 극지에 도달했다’고 씌어졌다. 98년 초엔 그 이전에 이미 여러 사람이 올랐던 겨울 백두산인데 ‘겨울 백두산 최초 등정’이라는 허영호 주연의 다큐 프로가 방영됐다. 


지난 5월 중순 에베레스트 남서벽에서 오희준, 이현조 두 산악인이 추락사했을 때 허영호는 사우스콜에서 조난팀의 무전 교신을 듣고는 위성전화로 곧바로 한국에 연락, 온 국민에게 이 비극을 서둘러 알렸다. 그러나 그는 조난팀에게는 위성전화로도, 무전기로도, 베이스캠프에서도, 카트만두에서도 위로의 말 한 마디 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 조난팀 대장 박영석과 사이가 안 좋았는지는 모르지만, 서울대병원 영결식장에서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8,000m급 거봉을 여러 개 오른다고 해서 그저 마음이 수양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수양은 커녕, 소위 산악인이 ‘등반 노역자’로서 추락할 수 있는 바닥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생각으로 새삼 씁쓸한 요즈음이다.  

2007년

- 글 안중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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