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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시대별 등반사 (2000년~ )

by 안그럴것같은 202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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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07년 : 기술개발과 장비의 발전, 정보의 공유 등으로 등정자수 증가, 봄 시즌 남쪽 기존루트 등반이 등정율 높아 상업등반대 급증. 예측불허의 시대

세계 최고봉에 대한 인기는 개인적 성취차원과 등반능력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상업등반대 활약 등으로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21세기가 열리면서 등정자는 100명 선에서 200명 선으로 해마다 100명씩 증가추세에 있고, 올해 500명을 돌파했다. 또한 등반의 난이도보다는 최고령, 최연소, 최단시간, 등반 횟수등 개인적인 기록경신에 많은 기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초등 이후 에베레스트의 의미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 역사적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에베레스트가 아무리 접근하기 쉬워졌다고 해도 결코 쉬운 산이 아님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2000년 : 티베트의 용이한 접근성과 상대적으로 낮은 입산료에도 불구하고 등정율 높고 사고율 낮은 네팔 쪽 남동릉 선호하여 많은 상업원정대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봄 시즌에 특별한 등반기록은 없고 개인기록이 풍성했다. 바부 치리 셀파가 남동릉 루트로 16시간 56분 만에 정상에 올라 최단시간 등정기록을 세웠고, 아파 셀파는 11번째 등정기록을 세웠다.

슬로베니아의 다보 카르니카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부터 스키하강을 시작해 4시간 40분만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그는 3,510m를 스키로 내려온 최고의 인물로 기록되었다.

 

총 637명(대원 391명, 고용인 246명)이 참가해 145명(대원 83명, 셀파 62명)이 등정했고, 사망은 2명이다

 

2001년 : 200명에 가까운 등정자가 배출되었다. 봄 시즌 프랑스대의 로체 버트랜이 부인과 함께 정상에 오른 뒤 함께 패러글라이딩으로 8분 만에 전진캠프까지 하강해 최초의 부부 활강기록을 세웠다. 5월 23일은 1953년 초등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인 88명이 정상에 섰고, 이날 제일 먼저 정상에 선 프랑스의 마르코는 정상에서 전진캠프까지 전 구간 스노보드 활강에 성공했다. 한편 네팔 고교생인 템바 트세리가 북릉루트로 올라 16세의 최연소 등정기록을 세웠고, 국제시각장애인연맹에서 후원한 에릭 바이헨마이러는 시각장애인으로 정상등정에 성공했다.

 

총 572명(대원 370명, 고용인 202명)이 참가해 182명(대원 108명, 셀파 72명)이 등정했다. 사망은 5명(대원 4명, 셀파 1명)이다.

 

2002년 : 봄시즌 5월 16일 77명이 정상에 서 1일 최다등정기록이 경신되었다. 아파 셀파도 12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을 기록했고 일본 여성 와타나베 다마에가 63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해 최고령 여성등정자로 기록되었다. 일본 남성 토미야스 이사카와도 65세로 최고령 등정자 기록을 갱신했다. 1952년 정상을 수 백 미터 앞에 두고 등정을 포기했던 프랑스의 레이몽 램버트의 아들 이브 램버트가 초등정을 꿈꾸던 아버지의 한을 50년 만에 풀었다. 또한 53년 초등정의 주역인 텐징 셀파의 손자 타시 텐징도 등정에 성공해 조부-부-손자에 이르는 등정을 기록했다. 2001년 에베레스트에서 최초로 스노보드 하강에 성공했던 프랑스의 마르크 바타르가 북벽의 혼바인꿀르와르~재패니스 꿀르와르를 통해 롱북빙하까지 스노보드로 하강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하강후 8,600m에서 실종되었다.

마오이스트의 폭동 등으로 원정대와 관광객의 수가 급격히 줄자 네팔정부는 입산료 인하정책을 발표했고, 7명 미만의 원정대는 입산료 절감의 혜택을 받았다. 또한 어린 산악인들의 보호차원에 나이제한을 통해 16세미만의 등반을 금지했다.

 

총 429명(대원 240명, 고용인 189명)이 참가해 159명(대원 89명, 셀파 70명)이 등정했다. 사망은 대원 3명이다.

 

2003년: 초등 50주년을 맞은 에베레스트는 5월 23일 하루에 115명이 정상을 밟아 당일 최다인원 등정을 기록했다. 또한 전년도의 최고령 등정기록을 일본의 유이치로 미우라가 아들과 함께 70세 나이로 등정해 기록을 또다시 최고령 기록을 갱신했다. 네팔의 밍 키파셀파(15세)가 북릉루트로 정상에 올라 최연소 등정기록도 깨졌다. 미국의 장애인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해 한쪽 팔만으로 최고봉에 오른 첫 번째 산악인이 되었다. 봄 시즌에는 펨바 도르지 셀파가 12시간 45분만에 정상에 서 등정시간 단축기록을 경신했고, 25일에는 락파 겔루 셀파가 10시간 56분만에 정상에 도달해 연이은 기록경신이 이어졌다. 최다등정자인 아파 셀파가 또다시 13번째 등정에 성공했고, 흑인으로 처음 시부시소 빌란이 등정에 성공했다.

한편 인도-네팔육군원정대는 총 31명이라는 경이적인 등정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총 847명(대원 498명, 고용인 349명)으로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266명(대원 140명, 셀파 126명)이 정상에 올랐고, 등반도중 4명(대원 3명, 셀파 1명)이 사망했다.

 

2004년: 봄시즌 북벽에 새로운 직등루트가 개척되어 수많은 노멀루트와 상업등반대 사이에서 빛을 발했다. 러시아대는 그레이트 꿀르와르와 혼바인 꿀르와르 사이의 거대한 암벽군을 통해 정상에 올라가는 루트로 1983년 미국대가 캉슝빙하의 동벽 중앙 립루트를 개척한 20만년만의 진정한 독립루트라 할 수 있다. 총 7명이 정상에 섰으며, 이들중 2명은 6월 1일 정상에 서 6월 등정 첫 기록을 기록했다.

최단시간 등정기록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던 도르지 셀파는 5월 20일 겔루셀파의 10시간 46분 기록을 2시간 36분이나 앞당겨 8시간 10분 만에 정상에 도달했다. 그는 또한 5월 16일에도 정상에 올라 4일 19시간 동안 두 차례 정상등정에 성공한 진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뉴질랜드의 러셀 브라이스가 이끄는 상업등반대는 고정로프 만m를 블루워터사로부터 공급받아 7,200m를 사용하는 에베레스트 등반사상 초유의 일을 벌여 상업성에 대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 팀은 총 33명이 정상에 올라 최다인원 등정기록을 세웠고, 5월 23일 하루에 23명이 정상에 서 1일 최다인원 등정기록도 경신했다.

 

총 645명(대원 385명, 고용인 260명)이 참가했고, 332명(대원 165명, 셀파 167명)이 등정했다. 사망자는 대원 7명이다. 등반인원에 비해 사망자 수는 줄고 성공율은 높아져 가는 추세다.

 

2005년 : 등반철학과 가치면에서 점점 그 빛을 잃어가던 에베레스트가 99개팀의 시도로 세계 최고봉의 위력을 과시했다. 악천후로 5월 중순이 되도록 시즌 초등팀이 나오지 않다가 5월 27일부터 6월 5일에 걸쳐 날씨가 좋아지자 260여명이 정상에 섰다. 셀파출신이 아닌 네팔여성 모니 물레파티가 펨바 도르제 셀파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었던 해이고, 아파셀파도 에베레스트 15회 최다등정기록을 세웠다. 그의 성공비결은 일기예보에 충실하고 좋은 산소를 쓰는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총 878명(대원 477명, 대원 401명)이 참가해 305명(대원 160명, 셀파 145명)이 등정했다. 사망자는 대원 6명으로 2천년도부터 셀파의 의존도가 높아져가는 것은 상업등반대의 폭발적인 증가로 대원 1명당 셀파 1명이 동반하는 등반형태가 주를 이룬다.

 

2006년 : 상업원정대의 활성화로 최대규모의 등정자가 배출되었고 사망사고도 96년 12명 사망이후 가장 많았다. 특히 스웨덴의 토마스 올슨은 스키활강 도중 사망했고, 하산 도중 산소부족으로 죽어가는 동료산악인을 보고도 구조하지 않는 상업원정대들의 윤리문제가 크게 대두된 해이기도 하다. 에베레스트 최다등정자인 아파 셀파는 또다시 16번째 등정에 성공했고, 오스트리아의 크리스티앙 슈탄글은 북릉을 통해 무산소로 베이스출발 16시간 42분 만에 등정 후 같은 날 6시간 후에 베이스로 돌아왔다. 98년 무산소 최단등정기록을 세원 마르크 바타르의 기록에 견주어 볼때 등반거리가 먼 북릉으로의 등반은 최단 무산소 등정기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네팔의 다와셀파는 티베트쪽에서 정상에 올라 네팔쪽으로 20시간 15분만에 횡단하는 최단시간기록을 세웠다. 의족을 한 뉴질랜드의 마크 잉글리스도 러셀 브라이스의 상업등반대에 합류해 정상등정에 성공했는데, 그는 뉴질랜드 산악구조대원으로 활동하다가 마운트 쿡에서 두 다리에 동상이 걸려 무릎 아래까지 절단했었다.

 

총 850명(대원 472명, 고용인 378명)이 참가해 494명(대원 241명, 셀파 253명)이 등정했다. 총 사망은 11명(대원 8명, 고용인 3명)을 기록했다.

 

2007년 : 천 명이 넘는 사상 최대 등반 러쉬, 600명이 넘는 등정자 배출

 

에베레스트 등반사상 처음으로 천명이 넘는 총 1005명(대원 507명, 고용인 498명)이 참가해 628명(대원 311명, 셀파 317명)이 등정했고, 7명(대원 3명, 고용인 4명)이 사망했다. 히말라얀데이타베이스의 엘리자베스 홀리여사와 현재 홀리여사의 작업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리챠드 살스배리는 2006년부터 원정대의 수를 정확히 집계하기 힘들어졌다고 밝히고 있는데, 상업원정대와 대원들이 카트만두의 2~3개 트레킹회사에 신청한 뒤 정작 베이스캠프와 전진캠프를 공유하고 등반은 따로하면서 고용인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중복된 신청을 집계한 결과 2006년의 원정대수를 최하 83개~100개대로, 2007년은 90~116개대로 집계했다. 고용인수와 대원수가 50대 50으로 많은 원정대가 상업등반대의 형태를 띠고 대원 1명당 셀파 1명을 고용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통계학적 등반사

 

1953년 초등정 이후 2005년까지 총 921팀이 도전하여 482팀이 등정에 성공하여 52.3%의 등정율을 보였다. 지난주에 발표된 히말라얀데이터베이스의 참가인원, 등정자, 사망자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6년~2007년까지 원정대는 최대 216개 팀으로 참가인원만도 2006년에 850명(대원 472명, 고용인 378명), 2007년에 천명이 넘는 1005명(대원 507명, 고용인 498명)에 달했다. 초등이후부터의 총인원으로 따지면 15,752명(대원 9,201명, 고용인 6,551명)에 등정자는 3,680명(대원 2,084명, 셀파 1,596명)의 엄청난 기록이 쏟아져나왔다.

 

여기서는 2005년까지의 통계자료를 주축으로 에베레스트의 통계학적 등반사를 살펴보면, 패러글라이딩 활강이 5번, 횡단등반이 8번, 스키 및 스노보드 등반이 15번 이루어졌고, 총 921개 팀중에 238개 팀이 무산소로 등반했다. 이중 단독등반이 1명, 등정후 하산길에 유명을 달리한 사람이 50명, 불법등반이 9명, 그리고 무산소등정자가 132명으로 집계되었다.

에베레스트 등정자를 배출한 국가는 총 91개국으로, 국가별로는 네팔 1033명, 미국 301명, 일본 125명, 중국 104명, 영국 96명, 인도 83명 러시아 73명, 스페인 63명, 프랑스 62명, 한국은 57명이 등정하여 10번째 최다 등정자 국가이지만 2006년과 2007년 통계가 발표되면 순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등반시즌별 등정율은 봄 시즌이 60%를 넘고, 여름시즌 13%, 가을시즌 31%, 그리고 겨울시즌이 17.8%이다. 베이스에서 정상까지의 평균 등반시간은 봄 시즌이 43.4일, 여름 시즌이 44.33일, 가을 시즌이 39.11일 겨울 시즌이 31일이다. 아래 도표를 보면 등반대의 증가에 따른 여러 가지 다양한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등반대의 폭발적인 증가와 1980년부터 최근까지의 루트별 선호도, 시즌별 루트별 등정율, 사망율 등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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