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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시대별 등반사 (1980~1999년)

by 안그럴것같은 202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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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쿄리에서 본 에베레스트

 

1980-1989년 : 원정대 폭발적 증가와 새로운 등반방식의 추구, 새 루트개척의 경쟁시대. 동계초등과 남릉루트 초등정시대

 

중국이 79년 문호를 개방하면서 등반기회가 많아지자 등반대가 폭발적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70년대 불과 26개팀에서 80년대에는 무려 139개 팀으로 6배 이상 늘어났다. 산악강국들은 새 루트의 개척 경쟁에, 산악 신생국들도 경제성장과 등반활동 성장기를 거쳐 양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다변화된 등반목적에 따라 새로운 등반방식을 추구하고, 난이도가 높은 루트와 무산소 극한등반을 추구하는 원정대가 늘어난 시대였다. 결국 등반방식이 변화되면서 괄목할만한 등반이 많이 이루어져 9개의 새 루트와 2개의 변형루트가 탄생되었다.

 

1980년 : 동계 초등. 무산소 단독등정

1980년은 폴란드대의 역사적인 동계 초등정이 이루어진 해다. 에베레스트 동계 초등은 히말라야 8천미터봉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것으로 새로운 등반방식이 추가된 것이다. 안드레이 자와다가 이끈 폴란드대의 크리스토프 비엘리키와 레제크 치히가 동상입은 발을 이끌고 2월 17일 정상에 등정했다. 자와다 대장은 한달만에 폴란드 남릉 원정대도 꾸려 안드레이 촉과 예지 쿠크츠카가 5월 14일 정상에 서 7번째 새 루트를 열었다. 이로써 동계 초등정과 남릉초등을 일군 폴란드는 80년대 가장 강력한 산악국가로 부상되었다. 일본대도 북벽에 수퍼 꿀르와르라 명명한 새 루트를 5월 10일 등정해 6번째 새 루트를 열었고, 이태리의 라인홀트 메스너는 몬순시즌에 북사면 그레이트 꿀르와르를 무산소 단독등반으로 시도해 8월 20일 정상에 섰다. 1980년은 에베레스트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 획기적인 등반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해로 평가되었다.

 

1981년 : 고소순응에 관한 의학적 접근, 캉슝벽 첫시도

프랑스, 일본, 뉴질랜드, 미국 4개국에서 5개의 원정대가 파견되었으나 남릉에 도전한 미국대만 등정에 성공했다. 특히 의학조사원정대 구성된 미국대는 정상에서 심폐기능을 조사해 히말라야 등반같이 저산소 환경에서 인간의 고소순응과정을 의학적으로 조사해 향후 많은 원정대의 고소순응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다른 미국대는 캉슝빙하를 통한 캉슝벽을 최초로 시도해 6,750m 까지 진출했다. 에베레스트 동벽은 엄청난 눈사태의 위험이 도사리는 벽으로 에베레스트 초등자인 힐러리경과 K2 등정자인 디엠베르거, 미국의 로우등 유명 산악인이 참여했었다.

 

1982년 : 남서벽 중앙립 신루트 개척. 동계 재등 성공

봄 시즌 소련팀이 남서벽 중앙립에 새 루트를 뚫어 9번째 새 루트를 추가했다. 총 11명의 대원이 3차에 걸쳐 이 루트를 통해 정상에 섰고, 미국대가 그레이트 꿀르와르로 새 루트를 공략하다가 8,400m에서 후퇴했다. 한편 크리스 보닝턴이 이끄는 영국대가 전인미답의 구간으로 남아있던 북동릉을 알파인스타일로 완등하기 위해 보드맨과 태스거를 주축으로 도전했지만 8,230m에서 실종되었다.

가을시즌에도 3개팀이 도전해 캐나다대가 정상에 섰고, 네덜란드대와 79년 유고대가 초등한 서릉직등루트에 도전한 스페인대는 사고와 함께 고배를 마셨다. 동계시즌에도 2개팀이 도전장을 내 프랑스대가 남서벽에서 철수했고, 동계 재등을 노린 일본대는 야수토 카토대장이 12월 27일 정상 등정에 성공해 폴란드대에 이어 두 번째 동계 등정국이 되었다. 가토대장은 당시 에베레스트를 시즌별로(봄, 가을, 겨울) 3회 등정해 순다래 셀파에 이어 두 번째 최다등정자를 기록했었다.

 

1983년 : 동벽 신루트 개척. 남릉변형루트 개척. 동계 3등 성공

에베레스트 초등 30주년을 맞는 해로 12개팀이 도전했고, 78년~80년까지 6명에 불과하던 무산소 등정자가 83년 한해 7명이나 배출되는 극한등반의 증가와 에베레스트 최난 거벽인 동벽에 새 루트가 추가되었다. 가을시즌 캉슝빙하를 찾은 미국대는 과거 두차례의 정찰과 실패를 딛고 등반 43일만인 10월 8일에 3명이, 9일에 다시 3명이 총 6명이 등정에 성공하여 에베레스트에 10번째 새 루트가 추가되었다. 일본대는 81년 미국대가 이룬 남릉변형루트에 도전해 무산소등정에 성공했고, 또다른 일본대도 남동릉을 통해 무산소 등정기록을 세웠다.

서릉직등루트로 올라 북동릉으로 하산계획을 세운 막강 프랑스대는 무산소, 무셀파로 고소캠프를 설치하지 않고 등반을 감행, 8,200m까지 도달했지만 악천후로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등반은 당시 세계 산악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겨울시즌에는 일본대만 두개팀이 도전하여 남동릉으로 동계 제 3등을 달성했고, 남서벽대는 후퇴했다.

 

1984년 : 그레이트 꿀르와르 초등, 북벽신루트 초등, 남릉변형루트 초등, 서릉직등루트 초등

호주팀의 그레이트 꿀르와르가 초등되고, 미국대가 북벽에 신루트를 그리고 체코팀에 의해 남릉변형루트가 새로 추가되었고, 재등이 이루어지지 않던 서릉 직등루트가 불가리아 팀에 의해 무산소로 재등되었다. 봄 시즌 서릉 직등루트에 도전한 불가리아의 등정자 프로다노프는 등정 후 실종되었지만 서릉직등루트로의 최초 무산소 단독 등정자가 되었고, 그의 실종수색에 나섰던 4명의 대원들이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남동릉에 도전한 일본대는 여성대원을 정상에 올리려는 기치아래 바첸드리 팔이 인도 첫 여성 등정자를 기록했고, 세계 다섯 번째 여성 등정자, 최연소 여성 등정자를 기록했다.

가을 시즌에는 호주팀이 중앙 롱북 빙하에서 북벽의 좌측 그레이트 꿀르와르를 통해 정상까지 직등하는 신루트 등반에 성공해 11번째 신루트 개척에 성공했고, 등정자인 스나페와 모티메 두 등정자는 80년 메스너가 북릉-북벽 새루트를 무산소 등정한 이후 두 번째 신루트 무산소등정을 기록했다.

체코원정대는 폴란드가 80년에 초등한 남릉루트를 오르다가 7,400m에서 방향을 바꾼 남릉 변형루트인 체코루트를 개척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레이트 꿀르와르 직등루트에 미련이 있던 미국의 휘태커 등반대는 다시 북벽에 새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원정대를 파견했고, 필 에슬러대원이 단독으로, 노스콜~북릉~북벽~그레이트 꿀르와르를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일명 ‘에슬러 루트’를 개척해 12번째 새 루트를 탄생시켰다.

1985년 : 최고령 등정 및 7대륙최고봉 첫 완등자 배출

예년에 비해 저조한 등정율을 보였으나 대부분 원정대가 노말 루트를 피하고 고난도 신루트나 알파인스타일의 극한 방식을 추구했다. 봄 시즌 4개팀이 도전해 노르웨이팀만 성공했다. 이팀에 합류한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은 3차례 에베레스트 등반대장으로 참여했지만 이번에 첫 등정에 성공했고, 미국의 거부 딕 베스는 최고령(55세)등정에 이어 7대륙 최고봉 첫 완등자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영국의 크리스 보팅턴대가 다시 북동릉을 시도했지만 8,170m에 도달한 후 후퇴했고, 미국대의 서릉 시도도 수포로 돌아갔다. 뉴질랜드대는 북벽에 새로운 루트를 뚫기 위해 3개 루트를 동시에 시도했지만 악천후로 후퇴했다.

 

1986년 : 경량 속공등반 시작. 서릉에 새로운 루트 개척

롱북빙하~서릉~북벽을 공략한 캐나다대는 등반셀파를 동반하지 않은 채 등정을 시도해 콩돈과 캐나다의 여성 산악인 샤론 우드가 등정에 성공해 13번째 신루트를 추가했다. 이 등반대는 북쪽에서 접근하여 서릉을 등정한 최초의 원정대로, 샤론 우드는 이벽의 두 번째 여성 등정자이자 신루트를 개척하면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최초의 여성등반가로 기록되었다.

스위스-프랑스 합동대의 에라르 로레탕과 쟝 트롸에가 에베레스트 북벽을 2박 3일만에 등.하산하는 놀라운 경량 속공등반에 성공해 새로운 등반방식을 제시했다. 한편 등정여부와 관계없이 62년 실종된 어빈과 말로리의 등정여부와 증거물을 찾기 위한 수색원정대가 7,770m까지 진출했지만 악천후로 후퇴했다.

 

1987년 : 고난도 루트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 한국 동계 4등 기록

봄시즌 미국대가 북벽 변형루트에 도전장을 냈지만 8,750m 까지 진출한 뒤 후퇴했고, 여름시즌의 독일대와 스페인대도 모두 고배를 마셨다. 가을 시즌에도 7개팀이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영국대가 또다시 북동릉을 시도했지만 8,100m 지점에서 돌아섰다. 일본대의 서릉직등루트 개척도 수포로 돌아갔고, 에베레스트 초등자인 힐러리경의 아들 피터 힐러리가 이끈 원정대도 8,080m에서 후퇴했다. 겨울 시즌에 한국의 동계 등정이 허영호씨에 의해 이루어져 동계 4등의 업적을 달성했다.

 

1988년 : 동벽에 신루트 추가. 남서벽 알파인등반. 북동릉 완주, 남북 종단등반. 최단시간 등정 및 패러글라이딩 등반 등 획기적인 등반 이어져

봄 시즌 중국-일본-네팔 초모랑마 우정원정대가 남북종단 등반에 성공했다. 총 99명의 대규모원정대원이 참가해 14명이 등정에 성공했고, 6명이 횡단등반에 성공했다. 이 등반은 역사상 최초로 TV 생중계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등반의 순수성에 대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치밀한 계획과 위성중계기술, 네팔 셀파들의 등반력이 어우러진 성과로 평가되었다.

소규모 영국-미국-캐나다 합동대가 동벽 남동 버트레스 루트를 개척해 스테판 베너블즈가 5월 12일 단독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함께 정상을 공격한 웹스터와 앤더슨은 8,600m에서 포기했고, 약 93시간을 8천미터에서 보내며 힘들게 하산한 뒤 세 대원 모두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 일부를 잃었다. 베너블즈는 메스너에 이어 새로운 루트를 단독으로 초등한 두 번째 등반가로, 그리고 무산소로 신루트를 초등한 4번째 등반가로 기록되었다. 이로써 에베레스트에 14번째 신루트가 탄생했다.

호주대는 남쪽루트를 통해 최초로 셀파 도움 없이 등정한 최초의 등반대로 기록되었고, 영국대는 정상에 서지는 못했지만 북북동릉의 최대난관인 피너클지대를 통과했기에 더 이상의 등반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 한편 체코의 최고 클라이머들로 이루어진 남서벽 원정대가 정상을 등정한 뒤 사우스콜 하산길에 모두 실종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최소한의 장비와 식량만을 가지고 사흘만에 남서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해 현대 알파인스타일 등반의 최대업적이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났다.

프랑스의 마르크 바타르는 22시간 30분 만에 무산소로 정상에 등정해 1일 등정시대를 연 장본인이 되었다. 8명의 셀파를 고용해 순수 단독등정으로 볼 수 없고 등정시간을 단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의 장 브와벵은 정상등정 후 2캠프까지 12분 만에 하강해 최초의 패러글라이딩 하강에 성공했고, 미국의 스테이시 앨리슨은 미국 최초의 여성등정자로, 뉴질랜드의 리디아 브래디는 남동릉을 통해 무산소로 등정한 최초의 여성등정자로 기록되었다

 

1989년 : 원정러쉬 절정, 에베레스트-로체 동시 등정성공. 북쪽 시도 완패

봄 시즌 가장 주목을 받은 원정대는 유고팀의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로, 유고대의 비키 그로셀프가 단독으로 로체봉을 오른뒤 10일 만에 다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한편 서릉-혼바인 꿀르와르에 도전한 국제대팀은 정상에 선뒤 베이스로 하산도중 6천미터 지점 쿰부체쪽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대원 5명이 사망하는 전무후무한 사고를 당했다. 여름시즌 티베트 쪽에서 등반을 시도한 팀은 모두 실패했고, 89년 북쪽에서 등반을 시도한 팀들은 전부 완패했다.

 

1980년대는 에베레스트 등반사상 역사에 남을 기록들이 풍성했던 시기이다. 9개의 신루트와 2개의 변형루트가 탄생했고, 북북동릉의 완주, 남북 종단등반, 동계 초등, 무산소 단독등정, 최단시간 등.하산, 무산소 최단시간 등정, 패러글라이딩 하산등 획기적인 등반이 많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른 사고도 많았다. 1980-89년까지 총 139팀이 도전했고, 그중 43개 팀이 정상등정에 성공해 31%의 성공률을 보였다. 원정에 참가한 인원은 2,964명(대원 1964명, 고용인 1000명)이며, 등정자는 180명(대원 135명, 셀파 45명), 사망자는 60명(대원 40명, 셀파 20명), 그리고 무산소 등정자가 29명, 여성등정자 5명이 기록되었다.

 

1990~1999년 : 극소수의 모험등반, 개인성취의 등정주의 팽배, 상업등반대 출현으로 80년대보다 등반대 3배 이상 증가, 등정자도 2배 이상 증가한 시대

일부 극소수의 모험등반가들에 의한 신루트 개척과 첨예 등반방식이 시도되면서, 한편으로는 에베레스트에 대한 정보와 등반기량이 보편화되면서 개인성취를 위한 등정주의가 일반화되었다. 또한 상업등반대가 출현하면서 에베레스트는 개인등반활동과 맞물려 최고봉 러쉬를 이루게 된다. 원정대와 등정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알파인 속공등반의 극한등반과 개인기록 갱신을 위한 경쟁의 장이 되기도 했다.

 

 

 

1990년 : 대부분 노멀루트 시도, 등정자 전년에 비해 3배 증가

해면에서 정상까지라는 모토로 등반에 나선 호주대는 2월 벵갈만에서부터 천킬로미터를 걸어서 베이스에 진입해 5월 10일 정상에 서는 기록을 세웠다. 뉴질랜드대에 합류한 피터 힐러리가 5번의 도전 끝에 정상에 올라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에베레스트에 오른 최초의 부자지간 기록을 세웠다. 에베레스트 최단등정기록을 갖고 있는 프랑스의 마르크 바타르가 24시간 안에 에베레스트-로체를 등정할 목표로 등반대에 합류, 에베레스트를 성공하고 다시 로체봉에 나섰으나 산소 없이 등반한 그의 코에 동상이 걸려 하산했다.

유고의 안드레이 스트렘펠리는 아내 마리아 스트렘펠리와 함께 정상에 올라 에베레스트에 선 최초의 부부가 되었다. 프랑스의 쟝 로웰 로쉬와 아들 베르트랑 로쉬(17세)가 가을 시즌 에베레스트에 서 최초의 부자 동시등정을 이루었고, 아들 베르트랑은 현재까지도 외국인 최연소등정기록을 갖고 있다.

 

1991년 : 전년도보다 등반대 증가했지만 등정율 저조, 고용인 비율 낮아 의존도 줄어

8명으로 구성된 이탈리아대가 1984년 호주대가 초등한 그레이트 꿀르와르 루트를 변형한 새로운 변형루트를 추가했다. 노스콜 하단부로 나아가 아이스폴지대를 통과한 뒤 84년 에슬러루트 300미터 하단에서 그레이트 꿀르와르 하단부의 세락지대까지 우측 대각선으로 북벽을 횡단하여 보나리와 스로브스키가 정상등정에 성공했다.

일본의 메이지대팀은 동벽에 환상의 릿지라는 신루트를 뚫기 위해 등반에 나섰지만 6,400m 미터까지 도전한 후 후퇴했다.

 

1992년 : 총 90명의 최대 등정자 배출, 1일 32명 최다 등정자 기록. 동벽 남동립 재등성공

칠레대가 88년 베너블즈가 초등정한 후 등반 시도가 없던 동벽 남동버트레스를 루트를 도전해 대장 루트와 앙퓨리, 앙리타 셀파가 정상에 서 재등에 성공했다. 프랑스의 피에르 따르티벨은 남봉에서 제네바 스퍼와 사우스 필라 사이 안부를 가로질러 베이스까지 스키로 활강하는데 성공했다. 스페인의 이누라테기 형제도 동시에 등정해 최초의 형제 동시등정기록을 세웠다.

 

1993년 : 초등 40주년기념 최대원정대 기록, 등정율 74%. 네팔 정부의 원정대수 제한과 입산료인상 발표도 주요인. 여성원정대 러쉬

 

네팔정부가 환경보호를 위해 원정대수의 제한과 입산료 500% 인상을 가을 시즌부터 시행한다는 발표와 함께 많은 원정대가 봄 시즌에 몰렸다. 한국의 허영호대가 나티 셀파와 북릉으로 도전해 이튿날 남동릉으로 하산해 지원을 받지 않고 북-남종단 등반에 성공했다. 또한 여성등반대의 러쉬를 이룬 해이기도 하다. 한국, 인도, 네팔 3개국에서 여성원정대를 파견, 네팔의 파상 라무가 정상 등정 후 하산 중 탈진해 사망했고, 한국의 지현옥, 최오순, 김순주가 차례로 등정에 성공해 한국 최초의 여성등정을 기록했다. 한편 인도의 산토쉬 야댜브는 에베레스트 여성 2회 등정을 기록했고, 인도의 디키 돌마는 당시 19세로 최연소 여성등정자로, 미국의 마리 리페버는 47세로 최고령 여성 등정자를 기록했다. 앙리타 셀파는 에베레스트 8회 등정기록을 갱신했고, 가을 시즌 스페인의 라몬 블랑코가 60의 고령으로 등정해 최고령 등정자를 기록했다.

폴란드와 영국 합동대에 의해 북벽에 변형루트가 개척되었다. 초오유, 마나슬루 동계 초등정 기록을 보유한 폴란드의 베르베카는 세컨드 스텝을 오르는 루트대신 1924년 노턴이 시도한 북벽횡단루트를 따라 세컨드스텝을 곧장 올라 등정했다. 이 루트는 고소 체류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과 세컨드스텝의 안부까지 곧장 오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겨울 시즌 또 하나의 기록적인 등반이 성공을 거두었다. 일본대의 남서벽 동계등반대는 보닝턴루트를 따라 남서벽상에 3개의 캠프를 설치한 후 등반시작 18일 만에 동계초등의 위업을 달성했다.

 

1994년 : 네팔정부의 정책변화로 등반대 첫 감소, 대부분 티벳으로 몰려

대부분 노말 루트와 난이도가 낮은 기존루트 선택했고, 상업등반대 조직으로 유명한 뉴질랜드의 롭홀이 셀파가 아닌 외국인으로 4차례 등정에 성공했다. 또한 이 상업등반대의 엘링 카게가 북극. 남극에 이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여 인류 최초의 3극점 도달자가 되었다. 미국의 배리 비숍은 아들 브렌트 비숍과 함께 정상에 올라 힐러리 부자에 이어 두 번째 부자등정기록을 세웠다.

 

1995년 : 24개 팀중 20개 팀 티베트로 몰려. 일본대에 의해 북동을 완주, 한국대 남서벽등정

영국대의 한이 맺힌 북동릉이 대규모 일본 니혼대학팀에 의해 완주된 해였다. 7,850m에 5갬프를 설치한 후 팀을 교체하여, 8,350m에 6캠프를 설치하고 4천미터가 넘는 고정로프를 북북동릉에 깔아 놓은 후 셀파들이 다시 북동릉상에 2개의 캠프를 추가 설치한 후 5월 11일 정상등정에 성공했다.

영국대의 여성 산악인 앨리슨 하그리브스는 등반시작 34일만에 무산소 단독등정을 이뤄 1988년 뉴질랜드의 리디아 브래디에 이어 두 번째 무산소 단독등반을 일구었다.

이탈리아의 레인하드 페슈나이더는 북릉을 29시간 30분만 등.하산하는 경이적인 속공등반에 성공했다. 1924년 실종된 말로리의 손자 조지 말로리가 할아버지가 오른던 루트를 따라 정상에 올라 조부의 꿈을 실현시켜 화제가 되었다. 한국의 남서벽등반대(대장 조형규)는 오랜 숙원이던 남서벽을 성공시켰다.

 

1996년 : 러시아대에 의해 북벽에 새루트 추가. 최단시간등정 및 스키하강. 상업등반대 대참사

상업등반대의 가이드로 활동하던 미국의 스코트 피셔와 뉴질랜드의 롭홀이 5월 10일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설로 인해 대원과 가이드 5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겪었다. 네팔정부의 등반대수 제한과 입산료 인상으로 등반대가 티베트쪽으로 몰리자 다시 원정대원 수의 상한선을 무효화하면서 많은 원정대와 대원이 네팔쪽으로 몰렸고 이에 따라 힐러리스텝과 사우스 콜 사이에 대단한 정체현상이 벌어졌고, 악천후까지 겹치자 하루사이에 8명이 사망하는 최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상업등반대에 대한 비판과 네팔정부의 무분별한 정책에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북벽에서는 러시아대가 북북동벽 꿀르와르상에 신루트를 개척해, 더 이상 새로운 루트가 개척될것이 없을 것으로 알려진 에베레스트에 16번째 신루트가 추가되었다. 이 루트는 ‘자크하로프 꿀르와르’로 불리기도 한다. 북릉에서는 이태리의 한스 카메란더가 16시간 45분만에 정상에 올라 정상에서 전진캠프(6,400m)까지 스키로 하강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스웨덴의 고란 크롭은 스톡홀름에서부터 자전거로 유럽대륙을 횡단해 네팔의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2주간 장비와 식량을 혼자 옮긴 뒤 스페인대와 합류해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앙리타도 10회의 에베레스트 등정기록을 달성했다. 텐징 노르게이의 아들 잠링도 정상에 올라 세 번째 부자 등정자가 되었다.

 

1997년 : 상업등반대 증가했지만 상호 협조 하에 사고율 줄어, 북벽 변형루트 추가

봄 시즌 러시아대가 북벽상의 왼쪽 립을 등반한 다음 7,600m 지점의 북릉과 연결되는 새로운 변형루트를 추가했다. 북벽을 돌파해 다시 북릉에 서기까지 총 2개월의 시간이 소요된 이 원정에서 세르게이 소코로프(54세)와 알렉산드르 제렌스키(36세)가 정상에 올랐다.

 

1998년 : 개인기록 풍성, 전형적인 노멀루트 등반에 티베트 쪽 등정율 저조해

러시아의 아르센티에프 부부가 북릉루트를 통해 무산소로 올라 티베트에서 성공한 최초의 부부산악인으로 기록되었지만 하산 중 아내는 동사했고, 남편은 8,500m에서 실종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네팔의 가지 셀파가 20시간 24분만에 정상에 도달해 프랑스의 마르크 바타르 이후 최단시간 등정기록이 10년 만에 갱신되기도 했다

 

1999년 : 캉슝벽 11년만에 재등. 세컨드스텝에서 자유등반시도. 말로리 어빈수색대 말로리 유해 발견

네팔의 바부 치리 셀파가 정상에 선 후 21시간을 정상 텐트에서 보내는 최장시간 정상 체류기록을 세웠다. 말로리와 어빈의 사망 75주기를 맞아 조사등반대가 파견되어 북벽을 찾았고, 결굴 8,138m 부근에서 말로리의 주검과 그의 유품을 발견했다. 한편 이 원정대의 콘라드 앵커는 세컨드스텝을 자유등반 시도해 무산소로 세컨드스텝의 자유등반이 가능한 것을 처음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성산악인 캐시 오도우는 9년 남동릉으로 등정한 후 다시 북릉루트로 올라 남.북 양쪽으로 오른 최초의 여성등정자가 되었다.

인도의 컁슝빙하 동벽루트 등반대가 88년 베너블즈가 초등한 동벽 남동 버트레스를 도전해 인도의 여성 아마르 프라카그 도그라가 구상, 상게 셀파와 함께 제 3등에 성공했고, 여성으로는 최초로 동벽루트 등정자가 되었다.

 

1990년~1999년까지 에베레스트를 도전한 원정대는 총 330개 팀으로 168개 팀이 등정에 성공해 51%의 성공률을 보였다. 참가대원은 총 4,783명(대원 2972명, 고용인 1811명)으로 등정자는 359명(대원 316명, 셀파 43명), 이중 무산소등정자가 62명이었다. 사망자는 62명(대원 43명, 셀파 19명)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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