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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서) 아트인문학 (리뷰)

by 안그럴것같은 2021.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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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에 관한 책이다.

최근에는 그냥 손에 집히는 대로 책을 읽었는데

가장 최근에는 동양화에 관한 책과 서양화에 관한 책을 집게 되었다.

나의 발걸음이 미술 앞에 있었다.

 

제목이 약간의 낚시성은 있다.

요새 왜 그렇게들 인문학을 찾으시는지......

정작 한국 기업은 변하고 있지 않는 것 같은데.

 

저자에 대한 설명은 생락하고

 

책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르네상스 미술부터 현대의 예술까지 설명한(백남준과 앤디워홀도 언급된다.) 책이다.

내용이 어렵지않으며 재미있다. 추천할 만 하다.

 

아쉬운점은 카라바조의 그림이 어디서 나왔는지(표지 좌측하단)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이 어디서 나왔는지(표지 우측하단에 크게)

이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다시 찾아보려해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목차의 중간 일부분을 잠깐 살펴본다

 

3장. 시간이라는 무거운 족쇄가 풀리다 
어찌하여 신은 그 또한 이 세상에 보내셨는가 
변해야 하나 철저히 거부해야 하나 
빛과 대기마저도 잡아내다 
패러다임의 전환_3. 유화: 모든 것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시대를 보는 한 컷_부르주아 그리고 욕망의 개화 
미술 흐름 잡기_르네상스 후반기

 

이 3장 안에는 누구의 어떤 그림이 있을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르네상스 후반기에는 어떤 화가가 있었는지 기억 할 수 있을까.

(대충 기억나는 사람은 있다.^0^)

그래서 일단 그 점이 아쉽고.

 

다음으로는

너무 많은 화가들이 등장한다.

너무, 정말 너무 많은.

 

시대별로 대표적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저 사람도 아는, 굵직굵직한 화가들 두 세명과 

그 대표적인 화가의 대표작을 서너작품 소개하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너무 많은 작가들이 소개되다 보니 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양이 줄어들고

대부분은 한 작가의 한 작품이 소개되고

아주 잘나가야 두 작품 정도 소개된다. 

 

 

 

 

 

비록 책은 다 읽었으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멩스, 메시나, 코레조, 할스, 앵그르, 일리아 레핀, 페르메이르, 말레비치, 송동 (책을 대층 장별로 넘겨가며 첨보는 작가들의 이름을 적어봤다. 물론 작품도 첨 보는 것이 소개된다.)의 이름은 죽기전까지도 기억하기는 쉽지 않을것 같다.

 

책 속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저자의 머리말을 살펴본다.

머리말의 첫 줄부터 옮겨본다.

이것이 첫 줄이다.

 

 

시대 그리고 영혼, 이 두 단어로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미술은 시대를 담아낸다. 시대를 담아낸다 해서 역사처럼 말로 풀어 설명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한 장의 이미지로 보여줄 뿐이다. 그 한 장의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붓에서 캔버스로 옮겨지는 건 물감만이 아니다. 화가 내면의 무언가가 함께 옮겨지는데 그 가장 가까운 단어가 영혼이 아닐까 한다. 화가의 영혼이 물감 주위로 차분히 스며드는 동안 캔버스엔 어느새 시대가 자리를 잡는다. (중략) 그런데 이 중에서 시대가 더 중요할까, 아니면 영혼이 더 중요할까. 시대에 방점을 두면 미술이 지나온 역사는 결정론처럼 된다. 새로운 미술은 시대가 바뀌기 때문에 생겨나며, 화가들은 그에 순응해 그림을 그린 것이 된다. 이때 개성 넘치는 화가들은 짐짓 무시되어야 한다. 반대로 영혼에 방점을 두면 전혀 다른 미술사가 펼쳐진다. 새로운 미술은 시대와 무관하게 뛰어난 예술가의 손에서 생겨난다. (중략) 이 둘 사이에 균형을 잘 잡아나가는 게 무술사 서술의 중요한 덕목이겠으나. 이 책은 그러한 균형을 짐짓 무너뜨리고 영혼에 방점을 두었다. 그러다 보니 화가 개인의 위대함과 업적을 전면에 부각시키게 되었다.(5~6쪽)

 

저자 스스로 영웅주의 역사관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과 생각은 이 책 안에서도 모순을 일으킨다.

 

다음 그림과 설명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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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루카스 크라나흐 <바이마르 제단화> 1552년. 성베드로와 성바오로 교회

 

...그 옆으로 화가인 아버지 크라나흐와 검은 사제복을 입은 루터가 있다. 루터의 손은 성서를 가리키고 있는데 교회를 통한 믿음이 아니라 성서를 통한 믿음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예수의 옆구리에서 분출한 피가 크라나흐의 정수리에 떨어지고 있다. 이는 교회의 개입을 배제하고 신과 신도가 이처럼 직접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의미다.(79쪽)

 

-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종교개혁이라는 시대의 의미가 이 그림의 배경이라는 말이다.

 

 

 

카라바조 <마테오를 부르는 예수> 1598년.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카톨릭 교회로서는 더더욱 강력한 무기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과거 르네상스 그림은 조화롭고 아름다울 뿐이라 적합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 주류 미술로 유행하던 마니에리스모 그림은 특유의 관능적인 면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보로메오 추기경은 교회에 걸려야 할 그림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화려해선 안되고 단순명료해야 한다.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그 무엇보다 가슴을 파고드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로마 권력자들은 카톨릭 개혁의 무기가 되어줄 그림을 찾고 았었다. 그런 가운데 등장한 그림이 바로 카라바조의 그림이었던 것이다. (125쪽)

 

 

 

벨라스케스 <시녀들> 1656년.프라도미술관

 

1985년이었다. 당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던 영국 잡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서 화가와 비평가, 즉 미술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 투표를 실시했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그림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중략)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제법 상당한 격차를 두고 1위에 오른 그림은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었다. (158쪽)

 

 

 

모네 <수련>1907년, 휴스턴미술관

 

이처럼 튜브형 물감이 나오자 달라진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건 제대로 된 외광 회화가 가능해진 것이었다. 스케치만 하고 돌아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시작해 마무리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 무렵 철도가 대중화 되었다. 철도는 '엄청난' 속도로 공간의 제약을 없애버렸다. 화가들로서도 풍경을 그리기 위해 가고 싶던 장소를 마음껏 갈 수 있게 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주로 선택한 현장은 센 강변의 휴양지나 저 멀리 노르망디 바닷가였다. 기차가 없었다면 이러한 장소를 찾아 그림을 그리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튜브형 물감과 기차, 이 두가지를 기억하자. 인상주의 풍경화를 낳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시대적 요인들이다.(177~178쪽)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의 머리말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말인지 당나귀인지

 

그래도 책은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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