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클라이밍

윤대표 vs 윤재학

by 안그럴것같은 2021. 10. 6.
반응형
SMALL

  

        

 

중국 초(楚)나라의 어느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선전하기를 이 창은 예리하여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이라 하였고, 이 방패는 견고하여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는 방패라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느 사람이 그러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뚫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그 상인은 꼬리를 내리고 도망갔다고 한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가리켜 모순(矛盾)이라 한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 창과 방패의 대결을 궁금해 했었다. 대결이 이뤄졌다면 이 이야기는 ‘모순’이 아니라 ‘용호상박(龍虎相搏)’이 되었을까. 어쨌거나 이번엔 그 창과 방패의 결전을 보게 되었다.

 

윤대표. 어릴 적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숙연해진다. 그의 어릴 적 친구들은 그의 이름을 놀렸을지 몰라도 한국의 산악계는 그가 ‘대표’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 분을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으로 그를 소개하는 것이 가장 보편타당해 보였다. 7, 80년대 알프스와 히말라야는 그의 발아래에 있었고 유럽, 일본, 미국의 암장엔 그의 거친 손이 닿았다. 작은 키에 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이것이 윤대표다.

 

윤재학. 이렇다하게 내세울만한 해외등반 경험도 없지만 아무도 그를 만만하게 보지는 못한다.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의 그이지만 외유내강 형이라고나 할까. 등반에 대한 열정과 준비자세로 뭉친 그의 생각을 들어보면 밝게 환히 웃는 모습 속에 더 높은 산이 보인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갈비뼈가 네 대나 부러지는 추락 사고를 겪었고, 위암으로 절제수술을 겪었지만 그는 아직 선등을 즐긴다.

 

평일에 취재산행을 핑계로 북한산을 찾았다. 매표소 주변에 사람이 많다. 산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하룻재를 넘어가면서 릿지도사로 보이는 사람이  초보자에게 설명을 한다. “여기가 깔딱고개야. 여기 넘어가면서 숨이 깔딱깔딱하지......” 과연 저 사람은 통제구간이 되기 전 깔딱고개를 넘어가 본 적은 있을까 생각해본다. 굳이 도사의 도술 강의에 토를 달지 않고 조용히 하룻재를 넘어간다.

“이번 주말에 비가 많이 온다는데......”

“일기예보에서 일요일 오전에는 그친다니 좀 빨리 그치면 등반은 할 수 있겠죠.”

 

두 분이 대화를 나누며 올라간다. 두 분은 모두 코오롱등산학교에서 대표강사를 맡고 있다. 코오롱등산학교 수강생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각 조별 교육 만족도에서 수위를 다투는 두 분의 머리 속엔 당장 있을 취재산행 보다 주말에 있을 등산학교 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코오롱등산학교 외부적으로는, 최근 대한산악연맹에서는 1, 2차에 걸쳐 등산교수 연수세미나를 진행하였고 윤재학 선생님은 암벽기술과목의 정교수로, 윤대표 선생님은 설상등반 과목의 정교수로 임명되셨다. 30년 넘은 당신의 등반 경험을 등산 교육에 아낌없이 쏟는 모습을 보면 후배로서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선배님들, 어느 코스로 가시겠어요?”

“실크로드가 어떨까?”

실크로드길은 인수 동면 심우길에서 시작하여 횡단 등반으로 인수 서면으로 오르는 코스이다. 언론에 잘 소개되지 않은 코스로 후배 산악인을 위한 가이드를 염두에 두신 말씀이다. 하지만 취재팀이 연이은 취재산행에 지쳐 선배님들에게 양해를 구하여 궁형길로 코스를 변경한다. 이는 궁형크랙을 개척한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장에 대한 Attribution의 표현이기도 하다.

 

인수봉 앞에 선 취재진은 서로 아무 말 없이 벨트를 착용하며 각자의 일을 한다. 말이 필요 없다. 선등을 맡은 사람은 그저 끝줄을 묶을 뿐이고, 후등자가 확보 볼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하고는 출발해 버린다.

오아시스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로 주말을 방불케 한다. 사람은 많되 산악인은 없었다. 인수봉 곳곳에는 볼트가 남발되어 있고, 페이스에는 처음 본 닥터링에 초크와 때가 범벅이 되어있다. 등반을 코치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여기에서 톱로핑이 이루어진다. 인수봉이 싫어진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도 궁형길엔 아무도 없었다.

 

궁형크랙을 오른 뒤 의대길로 넘어선다. 맑은 하늘 아래 두 분의 대표강사가 함께 모였다. 윤대표의 창은 인수의 중앙을 뚫었으며, 궁형크랙의 창은 윤재학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는 방패는 하나의 팀이었다.

 

출처 월간 클라이머

글 이민호

반응형
LIST

'클라이밍'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단산 범골암 개념도  (0) 2021.10.09
안강영 선배님  (0) 2021.10.06
8자매듭 제대로하기  (0) 2021.10.04
climbing club - 청악산우회  (0) 2021.10.01
스포츠클라이밍과 암벽등반의 개관  (0) 2021.09.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