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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스포츠클라이밍과 암벽등반의 개관

by 안그럴것같은 2021.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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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이태리 등의 일부 유럽국가에서 클라이밍 대회를 개최하고 86년 UIAA가 이를 통합하여 관장하였다. 대회가 전 유럽 국가로 확산됨으로 해서 스포츠 클라이밍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세계산악연맹 내에 등반대회를 전담하는 기구로 CICE가 발족되었다. 스포츠 클라이밍이 전 세계로 확산되자 유로스타일은 미국 등 고전적이고 정통적인 등반방법을 고수하던 나라들로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혀 논란의 대상이 되었지만 각종대회에서 유럽세가 독보적인 실력을 과시함으로써 유로스타일이 범세계적으로 수용되게 되었다. 한편 요세미테의 정통등반도 사라테월 루트의 프리 초등이 미국등반가에 의해 성공됨으로서 대암벽의 프리화라는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암벽등반의 목적이 세분화되어 더욱 개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 중 하나가 CICE 주관의 월드컵이 올림픽 경기종목으로 추진되자 프랑스의 트리부, 라부투, 르그랑 등의 일부 클라이머들은 등반의 최종 목적을 대회의 우승에 두는 부류와 독일의 볼프강 궐리히, 알렉스 후버, 프랑스의 에뜨랑제, 미국의 토니 예니로 등과 같이 순수 자연 암벽의 등반만을 고집하여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최고 난이도의 향상에 그 목적을 두고 있는 부류로 나누어지기도 했다. 리용 세계 월드컵 대회와 국내에서의 88년 전국암벽대회가 인위적으로 설치한 벽에서 개최되면서 세계 곳곳에 인공암장이 만들어 졌다. 최초의 인공암장은 미국 시애틀에 있는 월리엄 지롱 캠프장의 인공암장이 모태이며 이를 흉내 내어 프랑스와 독일등지에 인공암장이 등장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최초 인공암장은 88년 5월 서울의 "사레와 월"이 폭5m, 높이4m규모로 만들어 진 것이다. 실내 암장으로는 89년10월 마산의 이근택씨가 만든 "악돌이 인공암장" 이 처음이며 서울은 "노량진 스포츠 클라이밍 센터"가 높이 3.5m 길이20m 폭 5m로 박현규씨가 만들었다.

현재 전국에 200개에 육박하는 실내외의 암장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국제 규격인 높이 12m를 넘는 타워형 벽들이 각 지방의 자치단체와 대학에서 만들고 있다. 처음 인공 암벽은 암벽등반의 기술발전과 60년대 이후 자유등반의 발전으로 겨울철 트레이닝과 보다 어려운 코스의 극복을 위한 트레이닝을 위해 설치되었으나 차츰 인공벽 그 자체만으로 멀리 야외로 나가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발전하였으며 또 유럽과 동구권에서는 각 학교의 체육관, 경기장, 아파트단지까지 인공암벽이 세워져 있고 미국의 실내인공암장은 월1,000명이 넘는 회원이 운동하기도 하는 등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서구의 클라이밍 열풍은 아시아 및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현재 국제 경기 등반 위원회(ICC:International Council for Competition Climbing)가 설치되어 각종세계대회 및 지역대회를 관장하며 95년10월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실내암장과 각종 경기대회는 클라이머 개개인의 기량과 자연의 섭리에 역행하며 위로위로 오르며 5.13~4급의 고난이도 등반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과거 산선배들이 푹 빠져 있던 산의 정서나 외경심은 상당히 희석되어 버렸고 다분히 개인주의적이며 모험과 개척정신을 잃었다고 한탄도 하며 알피니스트와 스포츠 클라이머(다수의 프리클라이머를 포함) 간의 "똥짐"이니 "판데기"라며 서로를 비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실내암장에서 트레이닝을 하며 기량을 키워온 고 "볼프강 궐리히"의 트랑고 타워와 베핀 섬에서의 개척정신, 그리고 우리 가까이는 일본의 유지 히라야마, 고 김형진,최승철씨의 투혼과 정승권씨의 열정은 양부류 모든 이의 자성과 노력을 요구할 것이고 이미 하나의 독립된 영역을 형성한 만큼 서로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며(장,단점을 인식하며) 유대 발전을 꾀해야 한다고 본다.

위에서 간략히 살펴보았듯이 스포츠 클라이밍은 암벽등반의 발전과정 속에서 탄생하여 하나의 확고한 위치를 확립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 클라이머 역시 경기 이외에 야외에서의 프리 및 스포츠 루트들을 개척, 등반한다. 이에 암벽등반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암벽등반은 알피니즘의 태동과 같으며 초기의 암벽등반은 목적지를 가기 위한 수단, 즉 등행 중에 나타나는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마테호른 등정으로 상징되는 "등정시대(Peak Bagging era)"를 거쳐 머메리로 대표되는 등로 개척시대에 이르러 알피니즘 본령이 산의 정상보다는 그 과정에 가치를 부여하는 맥락으로 암벽등반 역시 산에 접근하는 수단 이상으로 인식되어 암벽등반 자체가 등산행위의 한 장르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머메리즘의 주창이후 알프스 직등시대를 지나면서 몇몇의 미국산악인들이 유럽의 침봉들을 등반하면서 미국식의 암벽등반기술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식의 암벽등반의 개념은 산을 오르는 과정 속에 부딪히는 암벽구간을 돌파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요세미티라는 순수 대암벽을 오르던 미국인들에게는 순수암벽을 오르는 그들만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기술이 싱글로프 기술이다. 두 줄의 로프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보다 간편하고 쉬운 이 기술은 점차 유럽등반가들에게 인식되어 갔고 요세미티의 등반가들은 긴 피치를 등반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식량이나 장비를 끌어 올리기 위한 대암벽에서 짐 끌어 올리기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러한 열풍은 2차대전 후 금속공업의 발달로 하켄과 볼트 등 암벽에서의 확보장비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와 1965년을 즈음하여 요세미티 엘캐피탄과 하프돔에 더 이상의 루트 개척의 가능성이 없자 미국인들은 사막에 산재한 낮은 바위들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LA교외의 스토니 포인트, 남부 캘리포니아의 죠수아 트리등지에서 많은 장비와 특별한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등반하는 볼더링이 시작되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볼더링은 긴 피치의 축소판으로 해석되어 실제등반의 훈련 개념으로 행하여진 것이다. 짧지만 어려움이 집약된 볼더링을 통하여 등반기술이 향상되자 지금까지 인공 등반되던 루트들의 일부피치가 자유등반 되기에 이르렀다. 등반행위의 특성상 예로부터 등반가는 자신 또는 타인에게 엄격한 등반룰(RULE)을 세워 그것의 구현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정상보다는 루트를, 또한 그 루트를 어떤방식(Style)으로 올라갔느냐를 따지게 되었다.

자유등반(Free climbing)은 결코 현대에 고안된 것이 아니다. 하켄 등의 인공등반 장비의 출현 이전의 암벽등반은 어차피 프리클라이밍이라야 했고 뒬퍼, 레비츠, 비나쳐 등의 등반코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옛 거장들(Masters)의 자유등반 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곤란한 루트에 의한 등반"을 추구하는 시대에 와서는 때맞춰 필요에 의해 고안된 인공보조물의 도움을 얻어 인공등반이 성행하게 되었다. 최근 5~60년 동안 그 이전에는 필요한 만큼만 사용되던 인공보조물의 지나친 사용으로 어려운 거벽루트는 많이 초등되었다. 레비츠의 최초의 자유등반 루트에서는 어려운 부분이 하켄과 우드펙의 도움으로 극복되었기 때문에 그 실질적 어려움이 과장되었다. 지난날의 등반에서 인공보조물의 지나친 의존과 부적당한 장비(중등산화)는 자유등반이 가능한 등반도 인공등반에 의존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UIAA지침에서의 인공등반과 자유등반의 분리, 그리고 요세미티와 영국, 독일의 암장에서 뛰어나고 적극적인 등반가들이 집중함에 따라 다시금 "목표" 보다는 "방법"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70년대 초 자연보호주의운동의 확산으로 과도한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암벽의 손상을 방지하자는 클린클라이밍으로 표현되어 자유등반의 흐름을 더욱 가속화 시켰다. 75년 프렌드가 발명되면서 대암벽의 인공루트들이 하나 둘 프리화 되기 시작한다.

70년대 이후 "보다 낮고 어렵게“라는 경향은 록 클라이밍과 하드프리를 분리시키고 그 스포츠적인 측면과 경쟁이 심화되며 한, 두번의 등반으로 루트를 완전히 오르는 가운데 맛보는 희열은 또 하나의 자극제로서 2, 3의 행동을 유발하는 마조키스트적 향수로 트레이닝에 기계체조를 도입한 미학적 측면과 등반방법이 규정될수록 상호 경쟁적인 입장이 나타나며 스포츠화 되어 오늘날로 이어졌다.

이러한 방향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암벽등반은 크게 인공등반과 자유등반으로 나뉘어 진다. 하지만 인공등반은 그 환경의 부족, 즉 인공등반 대상루트가 고갈되어 A5이상의 난이도는 탄생하지 않고, 더욱이 개척당시 A5급 루트가 잦은 확보물의 설치 때문에 크랙이 넓어지거나 과다한 볼트의 고정설치로 인해 A4급으로 저하되는 퇴보현상을 보이고 있는 점은 앞으로의 등반 방향이 순수 암벽등반이든 스포츠 클라이밍이든 결국 자유등반쪽의 흐름을 지향할 것으로 본다. 자유등반은 더욱 난이도를 높여 극도의 어려운 오버행에서 5.15를 향하며 경기등반에서도 세계대회 결승전은 5.13c/d급을 온사이트 방식으로 등반이 가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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