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름다운 시집이다.
시집을 읽어본 게 언제적이던가. 25년은 넘은 듯 하다. 나의 감성은 그동안 너무나 매말랐다. 이 시집을 읽고, 매마른 내 가슴에 촉촉한 봄비가 내렸다. 전에 읽었던 시집은 그냥 시만 있었는데, 이 시집은 매 페이지 따뜻한 그림과 함께 캘리그래퍼가 쓴 시까지 있어 더욱 감성적이다.
내가 본 이 책은 30쇄. 시집이 30쇄나 출판된다니 놀랍다.
시인 나태주는 1971년 등단, 40년이 넘는 교직 생활 후 교장으로 정년퇴직하셨다. 나이가 상당히 많으실 것 같은데 이런 감성을 갖고 계시다는 게 놀랍다. 아니면 그 연륜이 이런 글을 쓸수 있게 만든 것일까.
시집을 읽으면 몇 시만 가슴에 와닿고 대부분은 그냥저냥인데, 이 시집은 그렇지 않았다.
모든 시를 다 블로그에 남기고 싶지만 몇 작품만 올려본다.
사는 법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러고도 남는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그런 사람으로
그 사람 하나가
세상의 전부일 때 있었습니다
그 사람 하나로 세상이 가득하고
세상이 따뜻하고
그 사람 하나로
세상이 빛나던 때 있었습니다.
그 사람 하나로 비바람 거센 날도
겁나지 않던 때 있었습니다
나도 때로 그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멀리서 빈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목련꽃 낙화
너 내게서 떠나는 날
꽃이 피는 날이었으면 좋겠네
꽃 가운데서도 목련꽃
하늘과 땅 위에 새하얀 꽃등
밝히듯 피어오른 그런
봄날이었으면 좋겠네
너 내게서 떠나는 날
나 울지 않았으면 좋겠네
잘 갔다 오라고 다녀오라고
하루치기 여행을 떠나는 사람
가볍게 손 흔들 듯 그렇게
떠나보냈으면 좋겠네
그렇다 해도 정말
마음속에서는 너도 모르게
꽃이 지고 있겠지
새하얀 목련꽃 흐득흐득
울음 삼키듯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려앉겠지.
묘비명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안부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네가 있어
바람 부는 이 세상
네가 있어 나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된다
서로 찡그리며 사는 이 세상
네가 있어 나는 돌아앉아
혼자서도 웃음 짓는 사람이 된다
고맙다
기쁘다
힘든 날에도 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 비록 헤어져
오래 멀리 살지라도
너도 그러기를 바란다
아침 식탁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것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하루가 잘 저물고 저녁이 오는 것
그보다 더 다행스런 일은 없다
앞에 앉아 웃으며 밥을 먹어주는 한 사람
이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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