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읽으면서 다른 비슷한 책이 계속 생각났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두 저자의 취향이 아주 비슷하다.
둘 다 산에 다니는 것이 취미가 아니었으며 웃기고 위트가 있으며 등산가들을 비꼬는 듯한 태도가 거의 동일하다.
유쾌한 책이다. 읽는 내내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산행을 하기 전 준비를 하며 산행에 관한 저자의 철학, 1차 워킹 산행, 2차 스키 산행.
신기했던 것은 저 2차 스키 산행이 부활절 연휴에 이뤄진다. 부활절은 4월 초, 중순이다. 그런데 저 시기에 눈이 산장 지붕까지 올라와 있다. 살짝 드러난 지붕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 노르웨이는 저 정도구나 싶었다. 북유럽의 살인적인 물가만 아니면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스스로 자연으로부터 벗어났기에 시간을 내서 자연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사회 속의 인간관계와 평소의 삶에서 벗어난 자연 속에서의 자발적 고립을 원하는 것이다.
현대의 우리는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오며 자연을 바탕으로 한 고된 삶에서 벗어나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 이 시점에 도달한 우리는 이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러한 경향은 오랫동안 자식을 원했던 부부가 마침내 자식을 보자마나, 아이가 없었던 여유로운 삶을 그리워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63쪽)
저자의 표현 중에는 ‘정복’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정복이라는 표현은 산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쓰는 표현이다. 언론을 예로 든다면 공중파 방송국이나 조중동 같은 주류 언론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영화 <히말라야>에서도 이 ‘정복’이라는 용어 사용에 관해 작은 에피소드가 나온다. 산을 메인으로 하는 월간산 같은 잡지에서는 정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등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저자가 코미디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노르웨이의 언어와 문화상 차이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저자는 산행 동반자의 조건으로 등산 경험이 많으며 내 농담도 잘 받아주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우연히도 그런 사람은 나와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후 이어지는 산행기에서 그 사람을 항상 ‘기록담당자’라고 표현한다. 집사람, 아내, 와이프라는 표현과 그 사람의 이름은 본문 내용 중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담당자’
노르웨이 코미디언의 반강제 등산 도전기
노르웨이 베스트셀러 1위?
노르웨이에서는 이런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는구나 싶었다.
한국이라면 유재석이 등산기를 썼다면 순위에는 올라가겠지만, 장담하건데 1위는 못올라갈거다.
노르웨이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없어서 최고봉은 얼마나 되나 검색해봤다. 갈회피겐 이라는 산으로 높이는 2400미터 이상이다. 음, 땅은 넓어도 높이는 만만하군.
번역 손화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대학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다. 1998년 노르웨이로 이주한 후 크빈헤라드 코뮤네 예술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2002년부터 노르웨이 문학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노르웨이번역인협회 회원(MNO)이 되었고, 같은 해 노르웨이 국제문학협회(NORLA)에서 수여하는 번역가상을 받았으며, 2014년에는 ‘올해의 번역가’로 선정되었다.
역자 소개의 일부를 옮겨봤다.
한국사람들은 보통 이런 경우가 많지 않은데. 한국에서 영어를 전공했는데 오스트리아로 가서 피아노를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노르웨이 예술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칠 정도면 피아노에도 아주 조예가 깊다는 말인데, 번역가로 활동한다? 이건 정말 있기 힘든 케이스가 아닐까 한다.
번역이 조금 거슬렸던 것은 ‘너드’라는 표현이 두 번 등장한다. 그에 맞는 정확한 한국어가 없어서일까. 대충 비슷한 한국어로 바꾸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너드 라는 표현이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외래어인가.
책 속으로
일기예보는 더 짙은 안개를 예보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산장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기분 좋은 산행이 될 것은 틀림없어요.”
저 말은 듣고 저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녀 스스로도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내가 그 말을 믿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녀는 등산복을 입은 도널드 트럼프다. (239-240쪽)
아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B로 시작하는 어느 브랜드에서는 아웃도어용 망사 내의를 만든다. 나도 하나 있다. 이 제품에 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맞은편 테이블에선 이미 한 청년이 파스타와 감자를 먹기 시작했다. 그는 내복도 입지 않은 채 그물로 짠 듯한 망사 상의를 입고 있었다. 그러한 옷차림이 허용되는 곳은 노르웨이에서 두 곳밖에 없다. 관광객을 위한 산장과 클럽. (353쪽)
산행이 마무리되어갈 즈음 저자는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용어 해설을 해놓았다. 몇 가지만 소개해본다.
아름답다 = 춥다
장관이다 = 춥다
매우 아름답고 멋있다 = 매우 춥다
성취감 = 지루해하던 일을 마침내 끝내다
그다지 멀지 않은 = 꽤 먼
바로 코 앞에 = 약 5킬로미터
완만한 길 = 가파른 길
명상적인 = 지루한 (430쪽)
한국에서도 산에 가면 흔히 듣는 말이다.
“얼마나 남았어요?”
“조금만 더 가면 되요.” “금방이에요”
나는 절대 저렇게 말하지 않는다. 내가 목적지에서 내려온지 20분 밖에 되지 않았을 때 올라오는 사람이 얼마나 남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두 시간에서 세 시간 걸릴거에요. 포기하려면 빨리 포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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