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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의 역사 (1)

by 안그럴것같은 2023.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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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그 20세기

 

1.프롤로그

 

Sir, I have discovered the highest mountain in the world!󰡓

 

1852년의 일이다. 어느날 인도 델리 북북동 140km 떨어진 데라-둔에 있는 인도측량국 장관실로 인도인 측량계산주임이 뛰어들며 숨막힌 소리로 󰡒각하, 지금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을 발견했습니다.󰡓 고 외쳤다. 그때까지 측량 부호로 Peak XV로 되어있던 봉우리가 테이터를 정리하다 8,848m 높이인 것을 알았다는 이야기다. 1849년 까지 세계 최고봉은 캉첸중가로 생각했고 측량국에서도 인도 평원에서 멀리 네팔 고봉들의 고도와 위치를 결정하기 위한 측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발견된 세계 최고봉에 영국왕실지리학회가 전임 측량국 장관이었던 죠지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따서 '마운트 에베레스트'로 한 것은 1865년의 일이다.원래 이 산에는 티베트의 '초모랑마와 네팔의 '사가르마타' 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당시는 서로 국교와 교역이 없어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세계 최고봉이 발견된 19세기 중엽은 유럽에서 비로소 등산에 활기가 일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즉, 유럽에서 가장 높은 몽블랑이 1786년 초등되고 1865년에 4,000m급으로 마지막 보루였던 마터호른이 완등됨으로써 이른바 등산사상 황금기를 기록했다.

알프스에서 이렇게 눈부시게 활동을 벌인 것은 당시 국력에 힘입은 영국인들이었지만, 1875년에 영국산악회가 생기면서 비로소 근대 등산이 제 모습을 갖추고 점차 표고 4,000m 지대에서 카프카스,뉴질랜드 그리고 안데스로 무대를 넓혀 나갔다.그리하여 19세기 말에는 머메리의 낭가파르밧 도전으로 인간이 처음 8,000m급 고봉과 대했다. 그보다 10년 전인 1885년경, 역시 영국의 청년 장교 영허즈번드가 북경에서 중앙 아시아를 가로질러 카라코룸에 이르고, 이어 무즈타우 패스를 넘어 발토르빙하로 나왔으며, 그 뒤 그는 파밀의 오지까지 들어가는 활동을 계속했다.

이 무렵 등산을 목적으로 하는 순수한 활동으로 1883년 영국인이 알프스의 가이드를 데리고 가르왈 시킴 등의 7,000m 가까운 고봉들을 오르기도 했는데, 19세기말에는 프레쉬휠드가 캉첸중가 주변을 돌아 고전적 탐험기를 세상에 내놓는 등 히말라야 고봉에 대한 관심이 등산가들 사이에 날로 고조해갔다.이렇게 해서 19세기가 막을 내리고 20세기가 밝았지만 에베레스트가 발견된지 반세기가 지나도 이 최고봉을 노리는 자가 없었다. 중앙 아시아의 드넓은 고산지대의 지도가 없었고 거의 비경이어서 우리 6~7천미터 급이 등산의 대상으로 될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리하여 20세기 초엽인 1907년에 가서야 영국의 롱스태프가 가르왈 히말라야의 트리술(7,120m)을 등정하여 비로소 7천급 초등정을 기록했으나 그 뒤 20년 동안 이 기록을 갱신하지 못했다.물론 그 사이에 영국의 케라스가 시킴미이드와 6~7천미터 봉에 오르기도 하고 노르웨이 등산가 둘이 카브루(7,338m)에 등정을 시도했으며, 이탈리아가 쿤(7,087m)에 올라갔다.

또한 1909년에는 역시 이탈리아의 아브룻지 공이 비로소 원정대를 구며 8,000m급인 K2에 도전했만 실패하자 방향을 틀어 초코리자(7,654m) 정상 가까이 진출하기도 했다.그때까지 히말라야 고봉으로서 가장 높이 오른 기록이었다. 이렇게 20세기 초엽 이탈리아의 히말라야 관심은 가장 높았지만 그것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더 이상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무렵 지구 위에는 또다른 탐험 활동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남극과 북극이 그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금세기에서 가장 뛰어난 전기물 작가였던 슈테판 츠바이크가 '남극점을 둘러싼 싸움' 이라는 글에서 20세기가 비밀이 없는 세계를 내려다 보고 있다. 육지가 모두 탐험되고 끝까지 남았던 황무지가 개간되자 처녀성을 지켜오던 그 띠를 풀었다. 예전의 지도와 지구에 있던 미지의 영역에 새로운 기록을 써넣었다 고.

그런던 지구상의 양극인 북극과 남극이 1909년 미국의 피어리와 그리고 1910년에서 11년에 걸쳐 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의 스코트가 전후하여 극점까지 도달했다. 그리하여 끝내 인류에게 남은 큰 모험의 하나가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일로 됐다.󰡑 윌리암 머어리가 그의 책 '에베레스트의 이야기' 첫머리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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