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댈 교수, 대단하신 분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처음 접하고,
영어가 좀 된다면 미국으로 건너가 청강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을 들게 만드신 분이다.
내가 교육을 받은 바로는 샌댈 교수의 스타일에 가장 가깝게 교육을 하신 분은 한 교수님(one이 아니라 성이 ‘한’씨)밖에 없었다. 아쉬웠던 점은 학생을 생각하게 만드는 교육은 학생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간혹 일부 저자는 여러 책을 쓰게 될 때 책 별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있다.
샌댈의 책은 일단 그렇지 않은 걸로 보인다.
이 책도 30만부가 팔렸다니, 대단한 책이다.
이 정도 팔리는 양이면 ‘마케팅의 승리’로는 이룰 수 없다.
역자는 후기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원고를 보고는 ‘아무리 잘 팔려도 3,000부 이상은 어림도 없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 그럴만도 하다.
이 사회가 정의롭지 못해, 사람들이 정의에 목말라 하던 때에 나왔으니 때를 잘 만났다고 볼 수 있다.
이 책도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결론으로 향한다.
그러나
샌댈의 책은 늘상 쉽지는 않다.
‘이건 이렇습니다.’라고 꼭 집어서 말하지 않는다.
“‘A’이라는 현상에 대해 ‘갑’주의자는 이러이러한 논거로 이러이러한 주장을 하며
‘을’주의자는 저러저러한 논거로 저러저러한 주장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해버린다.
갑과 을을 모두 소개한다. 물론 저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은 있다.
그러나
저 갑과 을의 주장을 길게길게 쓰다보니
소제목의 주제를 파악하지 않다보면
엉뚱한 논거에 관심를 주는 사람도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는데
‘갑’의 주장에 밑줄이 쫙쫙. 괄호 표시가 커다랗게.
‘을’의 주장은 깨끗.
내 앞에 이 책을 읽은 누군가는 샌댈과 다른, 자신만의 견해에 더욱 빠져들었다.
정신 차리고 책을 읽어서 잘못된 주장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
다만, 샌댈은 전작에서도 그랬듯 신화 자체를 보기 좋게 걷어차 주지는 않는다.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의 실마리를 마련해 보도록 디딤돌을 놓아줄 뿐이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4페이지)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추천의 글에서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이 책에서는 한국이 한 번 언급된다.
비록 여러 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결 같이 부모의 개입이 심해지긴 했으나, 가장 심했던 곳은 불평등이 가장 크게 두르러진 곳이었다. 가령 미국이나 한국 같은 나라였다. 그리고 스웨덴이나 일본처럼 불평등이 비교적 덜 불거진 나라에서는 그러한 극성 부모들도 덜 나타났다. (280쪽)
능력주의와 관련하여 주로 대학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온다. 저자에 따르면 SAT 점수는 내신 성적에 비해 집안 소득과 관련성이 더 높다고 한다. SAT는 과외를 통해 점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소득자’를 떠올리면 어떤 사람이 생각나는가. 아마도 월가의 금융인이 생각날 것이다. 돈 갖고 장난치다가 전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고 고액의 인센티브를 받아가는 사람들. 샌댈은 아무런 생산성 없는 이들의 활동에 ‘거래세’를 강화하여 생산적인 일에 더 집중하기를 주문한다.
저자는 미국의 입시와 대학서열화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비뽑기’를 주장한다. 일정 수준 이하의 자격이 안되는 학생을 대상에서 제외하고, 어느 정도 이상 수준이 되는 학생 중에서 제비뽑기로 학생을 뽑으면 대학의 문제는 해결된다고 제시한다.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이 주장에 따르는 반론과 그에 따른 샌댈의 주장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괜찮다고 느꼈다면
적극추천한다.
책 속으로
미국인의 70퍼센트는 ‘가난한 사람이 자력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유럽인은 35퍼센트만이 그렇게 여긴다. 이런 사회적 이동성 관련 믿음은 미국이 주요 유럽 국가들에 비해 왜 그처럼 복지제도에 소극적인지 설명해준다. (50페이지)
- 한국은 어느 정도의 비율이 나올까. 전두환 총통 각하의 교육관련 정책 덕분에 교과서 위주로만 공부하면 서울대법대를 갈 수 있었던 문유석씨의 견해를 생각해보면 요즘의 ‘금, 흙 수저론’은 씁쓸하다. 얼마 전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와 2박3일간 놀았는데, 이 친구는 어릴적부터 나와 참 다른 삶을 살았구나 느끼며 마음 아팠다.
선한 것과 위대한 것이 꼭 연결되지는 않는다. 사람이든 나라든 정의로움은 정의로움이고, 부와 권력은 부와 권력이다. 역사를 조금만 살펴봐도 강대국이 꼭 정의롭지는 않으며, 도덕적으로 존경할 만한 나라들이 꼭 강력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88페이지)
- 내가 돈이 많은 것은 내 능력 덕이 아니며, 내가 아픈 것은 내가 나쁜 일을 해서 천벌을 받은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갖기가 쉽지 않다.
피케티는 좌파 정당들이 노동자 정당에서 지식계급, 전문직업인 정당으로 탈바꿈한 것이 왜 그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불평등 증가에 대응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 준다고 본다. 한편 높은 학력을 못 가진 사람들은 엘리트가 밀어붙이는 세계화에 반발하고 포퓰리스트, 국수주의자 후보들에게 표를 던졌다. 미국의 트럼프나 프랑스의 민족주의-반이민 정당을 이끄는 마른 르펜 같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170페이지)
공정한 경쟁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나온다. 문제는 모두가 같은 지점에서 경주를 시작하느냐 그리고 훈련, 교육, 영양 등등에 똑같이 접할 수 있느냐다. 그렇다면 경쟁의 승자는 보상받을 만하다. 누군가가 다른 이보다 빨리 달렸다고 부정의하다고 볼 수는 없다. (199쪽)
- 부모님이 가진 재산은 같은가. 같은 학원을 다녔는가. 방학이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야 했는가 과외로 학비를 벌었는가 어학연수를 갔는가. 우리는 같은 지점에서 경주를 시작하지 않았다.
저자는 마지막 문단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 (35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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