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책 제목부터 찌릿하다.
먼저
저자 박노자
나는 이 이름을 들으면 로자 룩셈부르크가 생각나는데
설마 그래도 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따지는 않았을 것 같기는 한데
존경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고
흠. 뭐 어쨌거나
본인의 한국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서 나오지 않았다.
저자 박노자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Vladimir Tikhonov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5세기 말부터 562년까지의 가야의 여러 초기 국가의 역사>라는 논문으로 아시아 및 아프리카 학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쳤으며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러시아어과 전임강사를 역임했다.
한국 사회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토종 한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활발한 연구 및 강의 활동과 함께 국내 매체 기고를 통해 한국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 국적을 갖고 있으나 한국사람이라고 하기 애매한, 뭐 그러신 분이다.
그러기에 한국에 대한 제3자적인 입장에서 쓴소리를 하는 것이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한국어의 구사와 한문의 활용이 태생부터 한국인인 나보다 낫다.쪽팔리게도
시각이 다른 부분도 있고
공감 가는 부분도 있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부분도 있고
부끄럽게 하는 부분도 있고
박노자교수의 책은 한번쯤은 읽을 만하다.
동네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했더니 진짜 비치되었다.ㅎㅎ
(스티브 유 논란에 관해) 병역기피의 의혹(그의 한국 국적 포기와 미국 국적의 취득이 의도적인 병역 기피 행위라는 것이 법정에서 입증되지 않는 한 '의혹'이라는 명사를 꼭 붙여야 한다) 때문에? 지도층의 자제들 중에서 30~40%가 병역 면제된다는 통계도, 그 면제자의 상당수가 그 부모의 지위와 돈에 힘입어 병역을 사실상 기피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아들을 군대에 안 보낸 국회의원들을 일차적인 낙선운동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사장이 아들을 군대에 안 보낸 일간지에 대해서 절독 운동을 펼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술자리에서 저 썩은 오야붕들을 욕해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지도층의 일반화된 병역 기피에 대한 분노를 그냥 참고 있다. 참지 않는 것이 계급사회 질서와 정면충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충돌은 한 소시민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P.123
(이라크 파병에 관해) 그들이 수 없이 들먹이는 것은 오직 '국익'이나 '북핵 위기의 원만한 타결'이었다. 외교적인 언어를 일반적인 언어로 번역한다면 우리가 부시 도당의 중동 침략과 유럽, 중국과의 대립에서 부시의 편에 선다면 부시가 북한 침략을 하지 않고 우리를 살려두겠다는 이야기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이라크에서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북한과의 전행이 비화돼 한반다가 날아간다"는 부시라는 악질 골목대장의 협박에 우리가 "네 알았습니다. 두목님"하고 절한 셈이다. 몰론 '다 쓸어버리겠다'는 부시의 협박에 그대로 굴복한 정부 당국자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워싱턴과 오야붕'에게 굴종한다고 해도, 그 행동대가 이 골목을 박살내지 않는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노'라고 했다 해도, 꼭 그 졸개들이 당장 우리동네에서 편싸움을 시작한다는 것도 아니다. P. 144
(조선일보에 관해) 비리의 유형을 보면 취재 비용의 명목으로 회사 돈을 사용(私用)하는 등 말하자면 '신하'들의 목봉을 떼어 훔치는 식의 매우 파렴치한 범행도 있다. 조선시대의 신하 같았으면 임금의 덕이 그정도로 모자라는 사실을 안 경우 즉각 간쟁을 벌여 그 허물을 스스로 고치기를 종용하거나 그냥 조정을 떠나 귀향하는 것이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판 '임금'이 저지를 범죄행위의 직접적인 피해자이기도 한 '방씨 왕국'의 '신하'들은 '간언을 바칠' 생각을 하기는커녕 상습적인 도둑질을 하는 '임금'을 옹호하려고 나선다. P. 281
그래서 나는 한국에 갈 때마다 "안녕하십니까"를 로봇처럼 연발하는 대형 체인점보다 연로한 주인아저씨가 말투도 투박하고 인사도 잘 안 하는 동테 슈퍼로 더 잘 간다. 어찌할 수 없이 자본주의 사회의 유통구조를 이용해야 할 신세라면 차라리 약하고 어려운 쪽을 도와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P. 313
독자서평
이 같은 한국인과 한국 사회 때리기 분위기 속에서 가끔 신선한 충격으로 자기반성을 이끌어 내는 책이 있어 눈길을 끈다. 러시아 인으로 한국에 귀화한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1권의 흥행에 힘입어 지난해 2권을 출간할 만큼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강하다. 박노자 박사는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한국사학을 전공한 뒤 한국에 귀화했으며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내게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남다른 추억으로 남아 있는 책이다. 대학원 재학시절 '연세춘추'에서 독서 감상문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 때 주저 없이 내가 선택한 책은 '당신들의 대한민국'과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는 박노자 박사의 책이었다. 비록 학교 내에서 발간되는 학보였지만 내 생애 첫 원고료까지 받고 신문지상에 첫 글을 기고한 인연이어서 그런지 서재에 꽂혀 있는 이 책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그 때 기억이 새롭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2'는 사실 지난해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은 크게 1부 한국 사회의 초상, 2부 병영국가 대한민국, 3부 또 다른 대한민국, 4부 진보의 창 등 모두 4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책 전반을 흐르는 분위기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권위주의와 사대주의, 그리고 배타주의 등 편견과 오만함에서 비롯된 수없는 자기모순을 고발한다. 한 예로 성형의 천국 대한민국을 보며
"성형이 단순히 '신체에 대한 결정권의 행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체발부를 종교적으로 인식하는 것도 '자유'라 볼 수 없겠지만 남의 눈을 생각해서 얼굴을 뜯어고친다는 것은 더욱 심한 '예속'을 의미하지 않는가." (p.36)
라고 지적하며 우리의 미적 기준은 백인처럼 높은 코와 쌍꺼풀 눈 가름한 얼굴형으로 서구 중심의 세계 체제와 지역적인 대리인들이 표준으로 삼는 신체 모델에 내 몸을 무조건 맞추려는 체제에 순치된 욕망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이와 함께 국토로 쳐들어와 물리적으로 짓밟는 외세들을 퇴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욕망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기는 훨씬 더 힘든 일이라고 조언한다. 특히, 최근 여성들의 다이어트 열풍을 新코르셋과 다름없다고 비판한 학자처럼 날씬한 몸매를 원하는 여성들의 개미허리 증후군을 보며 남성적 시선 중심의 외모 지상주의야말로 여성에 대한 또 하나의 집단 폭력이라고 비판한다.(pp.36-40)
박정희를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라고 부르는 박노자는 일상 속의 권위주의와 합리화 된 폭력 사회의 원인을 박정희로 거슬러 올라가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 근대화 과정에서 안창호의 역할은 친미적 부르주아의 수령 격이었고(p.153), 서재필은 민씨 일파 제거에 칼을 들고 직접 지휘자로 나선 일본 사관학교 출신이다.(p.138)
이 처럼 한국의 근대사에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거침없이 칼날을 들이대는 박노자는 한국의 기형적인 민족주의와 배타주의, 그리고 사대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만해 한용운을 꼽는다.
"식민지 시대가 낳은 가장 뛰어난 '근대성의 비판자'였던 만해는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도 인류가 지나가야 할 낮은 발전의 단계로 생각했다. 그는 소작 쟁의를 일으켰던 농촌 빈민을 지지하고 미래의 이상을 '불교적 사회주의'(소유욕 없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설정하는 등 '종교적 진보주의자'로서의 성향을 지녔다. 그럼에도 그는 소련을 '지상낙원'쯤으로 생각했던 그 당시 좌파와는 달리 스탈린주의가 통치하는 소련에서의 종교 탄압에 대한 자료를 발표하는 등, 실천의 문제점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식을 보였다."(p.251)
박노자에 따르면 만해는 소련뿐만 아니라 우파의 숭배 대상이었던 서구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으며 민족 단결의 이념 뒤에 도사린 전체주의의 위험을 지적한 인도의 시인 타고르와 통하는 진정한 평화주의자다.
"만해는 1910년대 초기부터 국가와 종교의 미신으로 민중의 정신을 세뇌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총알받이로 만드는 서구의 애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의 모든 우파 지식인들이 서구의 사회진화론적 등식대로 약육강식을 '절대 법칙'으로 생각했지만 만해는 '인종의 우열을 논하지 않는 세계주의 시대'가 도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해는 독립 운동가였지만 그는 일제로부터의 정치적 독립뿐만 아니라 서구로부터의 지적인 독립,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인 자유와 평등을 추구했다." (pp.251-252)
이 책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사회가 가진 모순들을 뼈저리게 느끼고 반성한다면, 하나의 소우주라 불리우는 우리들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뀔 것이다. 대한민국을 바꾸기에 앞서 작은 우주인 나를 바꾸고 약육강식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치관 정립이 안 된 우리들의 일상이 조금은 안식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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