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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서) 노는 만큼 성공한다 (리뷰)

by 안그럴것같은 202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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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교수의 책이다.

저자 보고 바로 뽑아들었다.

 

김정운 교수가 제안하는 주5일 시대 일과 놀이의 심리학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책에서 느꼈던 것 만큼의 재미는 없었다.

위 책이 너무 재미있었다.

위 책은 개인적인, 수필적인 느낌이 강한 글이었다면

이 책은 이론적인 느낌이 강한 글이다.

그러다 보니 재미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기대를 했더니 조금 실망이.

기대가 너무 컸다.

책이 별로라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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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운

저자 김정운은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디플롬, 박사)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전임강사 및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2011년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서 그림을 공부하며 저술과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Kultur (in) der Psychologie』(독어, 공저)『노는 만큼 성공한다』『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남자의 물건』 등이 있으며, 『애무』『보다의 심리학』을 번역했다. 현재《월간중앙》 '김정운의 이어령 프로젝트'를 연재 중이다.

 

그냥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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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놀듯이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니 삶을 이 다섯 가지 특징으로 판단해보면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측정할 수 있다.

* 나는 '여기와 지금'에 너무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가? 내 삶의 현실적 조건만 보고 좌절하고, 또 다른 삶의 맥락에서 이뤄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은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 나는 '남의 돈을 따먹기'위해 일하는가, 아니면 내 만족을 위해 일하는가? 내 삶은 무엇을 얻기 위한 삶인가, 아니면 내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인가?

* 내 삶이 추구하는 목적이 과연 타당한가?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목적으로 인해 과정의 모든 중요한 것을 생략해 버리며 사는 것은 아닌가?

* 내 삶은 과연 내가 선택한 것인가? 아니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보긴 했나?

* 하루하루가 과연 즐겁기는 한가? 하루에 도대체 몇 시간이나 행복한 느낌으로 사나? (74쪽)

 

- 저 다섯 가지의 명제.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변에서 자꾸 구조대를 지원하라고 한다. 나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취미와 일의 경계를 넘나들고 싶지 않다. 시체를 치우고 싶지도 않고. 화염병과 쇠파이프 속에서 가위눌린 채 잠에서 깼었던 전우들이라면 절대로 구조대는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정보의 재조합을 통한 '낯설게 하기'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어른들은 빗자루를 가지고 청소할 생각 이외에는 어떠한 상상도 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빗자루를 말처럼 타고, 총싸움, 칼싸움을 하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간다. (중략) 레고블록과 같은 장난감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극대화한 것이다.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가 뒤바뀌거나 생략되어 버린다. 빗자루는 청소의 수단이 아니다. 빗자루 자체가 즐거움의 대상이거나 전혀 다른 즐거움의 수단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이 끊임없이 '낯설게 하기'를 통한 창의적 작업을 반복하는 것은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까. (93쪽)

 

- 어떻게 살면 재미있을까. 당장 답은 없지만, 곧 답을 찾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재미없이 살고 싶지는 않다.

 

 

 

TV와 같은 영상 매체보다 책이 창의성에 보다 도움이 된다. 책과 TV가 가지는 심상의 촉발 매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이다. TV와 같은 사실적 영상매체는 기본적으로 심상을 제한한다. 왜내하면 TV는 심상을 스스로 만들어 내지 않고 만들어진 영상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반면 책을 통해 형성되는 심상은 독자의 상상력에 크게 좌우된다. (중략) 

작가가 생략한 부분은 독자의 창의적 상상력에 의해 채워진다. 의식의 긴장을 풀고 멍하게 있는 시간이 오히려 창의력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최근의 창의성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일상생활 중에 창의성이 가장 높아지는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걷거나. 운전을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수영을 할 때 라고 한다. 어떤 문제에 골몰해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 자전거를 타면서, 산행을 하면서 EBS 일본어 강의를 들으며 중얼거리며 다니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 멍때리면서 달려보자.

 

 

 

세상에는 세 종류의 교수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 부류의 교수는 어려운 이야기를 무척 어렵게 하는 교수다. 대부분의 교수가 그렇다. 남이 어떻게 이해할지는 별로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들 중에 남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두번째 부류의 교수는 아주 어려운 이야기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다. 참 드물다. 나는 나름대로 이 부류에 속한다고 자부한다.

정말 황당한 교수는 정말 쉬운 이야기를 아무도 못 알아듣게 설명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세 번째 부류의 교수다. 가끔 있다. (128쪽) 

 

- 대학시절 선배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하는 학부생들이 있다. 채육학과 무용학과 학생들이다. 내가 체육과 무용을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공부해서 대학을 들어가서 할말은 없다만. 나의 동아리방이 다른 동아리들과 달리 실내체육관, 무용실이 있는 건물과 같은 건물에 있어서 대충 그들의 면면을 알고 있다. 그러다 어떤 교양체육 수업을 들었는데. "바깥쪽에서부터 '스킨, 팻, 머슬, 본...' " 전문용어 작살이시네요. 무지함을 드러내는 방법은 참 많다. 참고로 나는 대학 4년 다니면서 전공서적은 한글로 된 책이 없었다.

이런 면에서는 서용원교수님을 존경한다. 이런면만.

 

 

 

자녀를 결혼 시킬 때,(중략) 우리가 가장 먼저 보는 기준은 그 녀석이 얼마나 행복한 집안에서 자랐는가이다. 행복한 집에서 자란 놈이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소위 불행을 딛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돈이나 명예를 얻었는지는 몰라도, 대부분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167쪽)

 

- 내가 가장 간과했던 부분이다. 

행복을 모르고 자란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결국 이혼을 했다. 그의, 그녀의 아이들도 결국 행복을 모르고 자라고 있다. 내가 불행이 대물림 될거라 했다. 그 여인은 강하게 부정했다. 누가 자기 자식이 자신때문에 불행하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나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한국의 스티브잡스라 불렸던 고등학교 친구도 결국 목을 매달았다. 우리는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20세기는 성실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였다. 열심히 일만 해도 앞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는 창의적인 사람이 앞서사는 세상이다.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다.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다. 시키는 공부만 잘 하는 아이들은 이러한 새로운 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렵다. (173쪽)

 

- 친구의 아이가 과학고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엄마가 참 극성이었다. 아이들을 학원에서 학원으로 돌렸다. 당장 과학고에는 들어갔지만, 이 아이가 서울대를 가고 연세대 고려대를 가면,이 아이의 미래는 행복할까? 부모가 행복하게 살지 않았는데.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죽었을 때의 일이다. (중략) 장례식이 모두 끝난 후, 흥미로운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장례식 이전에 비해 영국 전체의 우울증 환자가 1/3으로 줄었다는 것이다.다이애나의 죽음으로 야기된 자유로운 감정의 발산, 억압된 눈물의 자유로운 분출을 통해 정신적인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신경생리학적 연구에 의하면 눈물에는 카테콜라민이라고 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섞여나온다고 한다. 울지 못하면 이 스트레스 오르몬이 몸 안을 돌아다니다가 암을 일으키고, 뇌경색을 일으키는 것이다. (221쪽)

 

- 그래 울자.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보고 울었었는데. 다시 볼까. 또 울었던 적이 언제였었지?

 

 

 

지금의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빼빼로데이'. '발렌타인데이', '자장면데이'와 같은 축제를 만들어 즐기는 것처럼, 작고 작은 축제가 계속되는 삶은 기쁘다. 너무 재미있어서 어쩔 줄 모른다. 축제와 기쁨, 재미가 반복되는 삶의 주인은 나다. 이들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고 반복되기 때문이다. (중략) 작은 축제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이들에게 삶은 매년 새롭고 흥미진진할 수 밖에 없다.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기쁨은 축제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헌데 당산이 기억하는 마지막 축제는 도대체 언제였는가? (262쪽)

 

- 6학년때 새학기 시작하자마자 담임에게 찍혔다. 친구와 장난치다 걸렸는데, 당시 그 친구는 '어느 지점 이하 남쪽은 다 걔네 할아버지 땅이래'라는 집안의 손자였다. 같이 장난은 쳤지만 당연히 내가 나쁜 놈이 되었다. 당시 같은 반 반장의 생일이 나의 생일과 같았다. 반장은 생일에 친구들을 불렀고, 나도 불려졌다. 나는 내 생일에, 나도 오늘이 생일이라는 말은 못하고, 반장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그 집을 찾았다. 내 생일에 반장의 생일을 축해했다. 공교롭게도 이 때의 반장과는 고3때 같은 반이 되었고, ㅎㅎㅎ (이때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

중고등때는 누구도 잘 생일을 챙기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그러고 대학에 왔더니, 내 생일은 늘 축제였다. 그리고 내 생일은 늘 산에서 보내야만 했다. 심지어 지방에서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가 올라온 날, 나는 지리산에 가야했다. 그리고 산에 다니는 악우들에게 내 생일을 말할 수 없었다. 생일을 말했다면 그 무지막지한 짐에다가 적어도 조촐한 초코파이와 양초가 추가되어야 했기에.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축제는 도대체 언제였던가.

축제와 기쁨, 나도 내 생일을 챙지지 않는데, ***데이라니 너무 낯설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언제 정말 즐겁고, 행복한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일상의 사소한 행복에 대해 사려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저녁 식사 후 아내 손 잡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이 정말 행복이다. 일요일 오후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꼬박꼬박 조는 것이 정말 재미다. 착각하지 말자. 인내는 쓰지만 그 결과가 달콤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지금 삶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참고 인내해서 나중에 많은 돈을 벌면, 행복해지고 재미있게 살 수 있으리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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