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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서) NL현대사 (리뷰)

by 안그럴것같은 2021.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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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손길을 이끌었다.

이 책을 찾기위해 간 것이 아니라

그냥 왔다갔다 하다가 제목을 보고 뽑아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관심없는 쓸데 없는 내용일거고

누군가에게는 가슴아픈 이야기

누군가에게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한줄 정리

80년대 이후 학생운동의 현대사

 

 

 

 

 


 

 

저자 박찬수

저자 박찬수는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제5공화국 시절인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그 무렵 수많은 학생이 그랬듯이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강제 징집되어, 동부전선 육군 7사단의 최전방 GP에서 군 생활을 했다. 제대하고 복학해보니 학교가 온통 ‘NL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1989년 3월 『한겨레』에 입사한 후, 사회부와 국제부를 거쳐 정치부에서 주로 정당과 청와대 취재를 담당했다. 1992년부터 1997년, 2002년, 2007년 대선을 직접 취재했고, 2004년에는 워싱턴 특파원으로 미국 대선을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제 작동방식을 비교 분석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을 썼다. 지금은 『한겨레』 논설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 뭔가 저자소개가 빠진 듯한 느낌.들지 않는가.

이 책은 2017년 발행되었다. 즉, 당시에는 한겨레 논설실장. 지금도 그 일을 하고 계실지는 모른다.

 

(2021년 7월에 출판된 책에 따르면 한겨레 선임논설위원으로 소개되었다. -2022년 4월 추가)

 

 

 

 


책 속으로

- 이 책에서 변절자를 통진당 해산 심판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김영환은 정부 쪽 증인으로 나선 이유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통진당은 극단적인 종북 성향 탓에 국민들로부터 확실히 고립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당은 사법적으로 해산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바꿨다." 그의 증언은 진보 진영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통진당에 대한 그의 시각은 차치하고라도, 30년 전 팸플릿에서 그렇게 강조했던 '의리'라는 측면에서 그랬다. 통진당을 변론한 이재화 변호사는 트위터에 "보수건 진보건 인간은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25쪽)

-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영환이다.

-또한 같은 페이지에서 백태웅씨가 언급되는데, 현 하와이대학교 법대 교수란다. 에휴, 똑똑하면 다 알아서 먹고 사는 구나. 어떻게 사시는가 궁금했었는데. 박기평씨는 간간히 소식을 접할 수 있었지만 백태웅씨 소식은 여기서 처음 접했다.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80년에 미군은 광주의 민주시민을 보호하기위해 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당시 시민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당시에는. 미군이 출동한 것은 사실이었다.

미국 항공모함 'Coral sea'가 필리핀 수빅 기지를 떠나 한국 근해로 출동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서였지 광주시민을 지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미 국방부는 5월 23일 '코럴 시'출동과 함께 "일부 지상군을 연합사에서 한국군 지휘하에 들어가도록 허가했다"고 밝혔다. 한국군 요청으로 20사단 등 일부 군 병력의 작전통제권을 한국에 넘겼다는 뜻이다.(46~47쪽)

-이로 인해 NL과 반미운동이 핵심이 된다.

그러나 'NL=주체사상'은 아니다. 주체사상의 혁명이론이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을 표방하지만, 북한의 주체사상과 남에서 받아들인 NL사조는 확연히 달랐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버금가거나 그것을 더욱 발전시킨 새로운 철학체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한 운동권에서 힘을 발휘한 것은 '철학과 사상으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운동가의 올바른 태도를 적시한 실천적 지침이었다. (80쪽)

- NL이 아닌 PD계열을 포함한 운동권은 NL을 싸잡에 '주사파'라 불렀다. 그 주장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저자가 말하고 있다.

-다음에서 NL과 주사파를 명쾌하게 정의한다.

NL 가운데 '주사파'를 어느 범위까지 보느냐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주체사상에 포함된 넓은 의미의 민족 문제에 대한 각성, 그걸 풀어가기 위한 전략전술과 통일 염원, 이런 정서와 논리까지 폭 넓게 주사에 포함시킨다면, 주사파가 다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노동당과 김정일을 추종하고, 그걸 명료하게 자각하고, 의식적으로 추구한 사람으로 한정한다면, 소수었다. (86쪽)

-전대협과 임종석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전대협 집행국에서 일했던 인사의 말이다. "임종석씨가 어느 대학 집회에 참여하면 그 대학에서 '가짜 임종석'을 50여명 모집해 집회가 끝난 뒤 임종석씨의 탈출을 돕게 했다. '임길동'이란 말이 허튼 얘기가 아니었다. 전대협의 전술 운용이 경찰보다 한 수 위이던 시절이었다." (125쪽)

 

 

 

 

- 학생운동 종말의 계기가 된 연세대 사태는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14일과 15일에는 경찰이 교내에 진입해 행사를 무산시키려다 실패했다. 서울과 지방에서 올라온 전의경 수 천명은 별다른 작전도 없이 교내에 들어갔다가,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무장한 학생 약 2만 명에 둘러싸여 곳곳에서 고립되고 얻어터지고 무장해제되었다. (131쪽)

- 그냥 창천교회 주변에 줄 서 있다가 줄줄이 들어갔다. 왼쪽 공학관에서는 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고생들 하는 군. 쯧쯧......' 우리는 태연하게 백양로에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에서 학생들이 정말 '튀어'나왔다. 학생들이 오는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1선은 왼쪽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왼쪽만 주시하고 있었다.

중대장은 "SY-44 발사준비!"명령을 내렸다. 나는 이미 그 전에 KP탄을 던졌다. 통닭집 앞에 있는 할아버지 마냥 인상 좋게 생긴 중대장님이었다. 다만, 바로 발사를 해야지 뭐가 준비야. 화학탄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나는 명령을 어겼다. 하지만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명령과 지휘는 중요하지 않다. 사는 게 중요하다.

우리 부대는 박살났다.

중대장에게는 세 명의 '보디가드'가 있다. 한 명은 거북이 등껍질 같은 방패, 다른 한 명은 허리 높이의 방패, 다른 한 명은 가슴 높이의 방패를 든다. 각 소대에서 체격이 좋은 대원을 중대장의 보디가드로 붙인다. 중대장은 당시에 내장파열을 당했다. 우리는 다 알고있다. 중대장이 그렇게 중상을 당한 이유를. 그 이유는 있어보이려고 백골단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백골단 헬멧은 우리가 쓰는 거에 비해 가볍고 간지가 났다. 중대장이 내장파열을 당하는 동안 보디가드는? 세 명 다 무사히 탈출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임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야했다. 겨우 학생들을 피해 정문으로 향하고 있는데 엎어져있는 우리 소대원이 보였다. 한태*였다. 그 먼지 날리는 와중에도 같은 소대원은 눈에 띄었다. 엎어진 놈(후임이다)을 부축해서 겨우 끌고 나왔다. 나는 영화 찍는 걸 좋아한다.

나중에 그때 일을 회고하며 "졸라 얻어맞고 엎어져 있는데 누가 부축해서 겨우 도망쳐 나왔습니다."라고 태*가 말했다. 방독면 쓰고 헬멧 쓰고 있으면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쉽지 않다. '그게 나다'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영화는 찍었으니까.

이 일로 중대원의 2/3가 경찰병원으로 실려갔다. 창천교회 앞 마당이 부상자 대기장소였다. 서대문경찰서의 모든 순찰차는 부상자를 경찰병원으로 나르는 데 동원되었다. 다음날 새벽에도 출동은 이어졌다. 출동 할 때는 상황실에 몇 명의 인원이 출동한다는 것을 중대 무전병이 보고를 한다.

(일반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무전용어로 얘기하지만 보통 얘기로 바꿔서)

"***중대 **명 출동합니다."

"(중대 인원이 그게 뭐야)뭐라고?(내가 잘못들었나)"

"**명입니다.(씨바 또 보고하기도 졸라 쪽팔리네)"

"알겠다."

- 연세대 사태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연세대에 모인 수 만 명 학생의 격렬한 '통일 투쟁'은 운동의 확산이 아니라 고립으로 끝났다. 그런 점에서 '반미'와 '통일'을 전면에 내세운 NL의 퇴조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166쪽)

 

 

 

 

-박세길의 새로운 시민론도 제시한다.

"1987년 6월항쟁만 하더라도 그걸 이끌어가는 야당이 있고, 재야의 스타급 인사들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촛불집회를 이끌어가는 건 초등학생부터 청소년, 회사원, 노인까지 일반 시민의 '집단지성'이다. 오히려 정당과 단체는 그 뒤를 따라간다. 정치지도자가 대중을 이끄는 게 아니라 대중이 정치지도자를 이끄는 시대, 곧 리더십이 쌍방향으로 흐르는 시대다."(175~176쪽)

-NL과 PD에 대해서는 제3자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PD는 전통적 서클에 가까운 형태로, 어떻게든 구성원들의 학습 수준을 끌어올리려고 한다.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고, 마음의 상처도 많이 준다. NL은 무리하게 저학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결의 수준이나 학습 수준이 안 올라오면,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한다. PD는 현학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반면, NL은 집단주의적이다. 술을 마시면 PD는 말은 많지만 대개 일찍 자리를 뜬다. NL은 술자리에서 별로 말이 없지만, 끝까지 남아있는 애들은 바로 그 친구들이다. 어떤 면에선 PD가 훨씬 대학생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자유분방하고 규율에 얽매이지 않으니까. 어쨌든 후배들은 좀 더 편하고 인간적인 NL을 많이 따르게 되니까, 학생원동권에선 NL이 늘 강세일 수 밖에 없다.(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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