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책은 겉장을 넘기면 안쪽에 저자 소개가 나온다.
이 책은 그 점에서 독자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양장본인 이 책의 겉장을 넘기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글. 사진 이병률
시를 쓰고
산문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술을 마시고
식물을 기르고
사랑을 한다.
저 ‘ㅅ’들과 함께 사는 혼자 사람.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솔직히 이걸 보고는 멍해졌다. 검색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서 등단했고 다수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많은 시집과 산문집을 쓰셨다. 한마디로 ‘글쟁이’라 하겠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산문집이다. 수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머리 아픈 얘기는 없다. 가끔 읽어서 머리를 맑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매번 학문적인, 과학적인 서적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잠깐 읽고 생각하고 다시 읽어보고 되새겨 보기 좋은 책이다.
‘글. 사진 이병률’이라고 되어 있는 것처럼 중간중간 저자의 사진이 한 페이지 또는 양 페이지에 나온다. 즉, 글이 많지 않아서 빨리 읽을 수 있다. 그러니 후딱후딱 읽지 말고 가슴에 와닿는 부분은 반복해서 읽고 음미하기를 추천한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대출하며 의문이 든 것은, 이 책이 세 권이나 꽂혀있었다. 도서관에서는 보통 보유하고 있는 책은 추가로 구매를 하지 않는데 왜 그랬을까? 사람들이 많이 대출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한국 영화 <파이란>과 외국 영화 <사랑의 모양>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두 영화 다 보지 못했다. 봐야할 리스트에 올려본다.
책 속으로
산을 넘으며 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러면 하나도 힘이 들지 않다.
한 사람의 무게 때문이다. (85쪽)
- 해봐야겠다.
우리는, 또 약속을 하게 될까. 첫눈이 내리면 어디서 만나자고.
그래, 인생은 그런 것이겠다. 그 말이 다였으며, 그 말이 무의미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인 것. 그러니 우리가 기약 없는 약속만으로 충분히 좋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거다.
첫눈이 온다는 건, ‘바깥을 내다보세요’라는 당신에게 보내는 인사이니까. 그리고 첫눈이 온다는 건, 그 첫눈을 밟으며 당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아름다운 가능성일 테니까. (96쪽)
누구나 자신의 사라짐을 앞두고 선명한 무엇 하나를 전면에 떠올릴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한 생의 전모이자, 태어남과 사라짐의 전말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에겐 그것이 ‘단 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사람 하나 가슴에 새겨 넣고, 어디로 발걸음을 향해야 할지 모르는 그 막막한 길에 그 사람 하나 절절하게 품고 떠났으면 한다.
그게 당신이었으면 한다. (104쪽)
- 그게 당신이었으면 한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으로 다가 아니라,
나 이렇게만은 살 수 없는 이유가
이토록 절절하다는 데 있는 것일 텐데
내가 세상에서 없어진 다음에 당신이 그것을 알면
나 얼마나 마음이 더 아플까 싶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다음에도
내가 울음 운 자리에 벚꽃물이 들어 빠지지 않는다면
나 얼마나 마음이 시릴까 싶다. (226쪽)
내 인생길 위에서 누구를 마주칠 것인가 기다리지 말고, 누구를 마주칠 것인지를 정하고 내 인생길 위에 그 주인공을 세워놓아야 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는 믿음이 우리를 그 사람 앞에까지 ‘데려다준다.’ 그리고 그 믿음의 구름층은 오래 우리를 따라오면서 우리가 지쳐있을 때 물을 뿌려주고, 우리가 바싹 말라있을 때 습기를 가득 뿌려준다. (255쪽)
왜 혼자냐고요
괜찮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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