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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서) 유한계급론 (서평)

by 안그럴것같은 202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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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제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책을 보자마자 영어 제목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레져 클래스’가 ‘유한계급’?

흔히 떠올리는 단어 ‘유한(有限), 무한(無限)’이 아니다.

유한계급론은 한문으로 ‘有閑階級論’이다. 다시 한번 한문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다.

 

<유한계급론>은 1899년에 출판된 책이다. 120년 이전에 나온 책이다. 간만에 옛날 고전을 골라봤다. 이 책은 1965년 한국에 최초로 번역 소개되었으며 최근에는 2007, 2012, 2018년에 각각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내가 읽은 책은 2019년에 출판된 책이다. 가장 최근 출판된 책이다 보니 역자가 기존 번역의 오류를 변경한 내용이 많다.

 

내가 본 ‘이 책’의 특징.

아무도 보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책’, 비닐 코팅지로 커버를 만든 페이퍼백, 종이를 접착제로 붙인 책이다. 그런데 앞표지에 접힌 흔적이 없었다. 내가 며칠 휴대하며 읽은 결과 앞표지에 접힌 흔적이 생겼다. 2019년에 출간되었으나 아무도 읽지 않은 새 책을 읽을 수 있는 영광을 나에게 준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감사드린다.

 

한 번 쯤 들어봤음직한 베블런효과를 먼저 짚고 넘어가자.

사회적 지위나 부를 과시하기 위한 허영심에 의해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수록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를 말한다.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상층계급의 과시적 소비를 지적한 데서 생겨난 말이다.

 

 

 

저자를 살펴보자.

저자 : 소스타인 베블런 (Thorstein Veblen, 1857~1929)

1857년 미국 위스콘신 주 노르웨이 이민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베블런은 칼턴대학을 졸업하고 1881년 존스홉킨스대학과 예일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다. 예일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1891년 코넬대학에서 다시 경제학을 공부한 베블런은, 1892년 시카고대학에 전임강사 fellow로 부임하며 사회주의를 강의하고 많은 글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899년 첫 책 《유한계급론》을 펴냈고, 이 책의 명성 덕분에 1900년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시카고대학을 사임한 베블런은 스탠퍼드대학 (1906년)과 미주리대학 (1911년)에서 강사로 지내며 《일하기 본능과 산업적 기술의 상태(The Instinct of the Workmanship and the State of Industrial Arts)》 (1914)와 《미국의 고등교육(The Higher Learning in America)》 (1918)을 집필했다. 미주리대학을 그만둔 베블런은 1919년 뉴욕의 사회과학원에서 다시 강사로 채용되었으나 오래 다니지 못했고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생활을 꾸렸다. 1923년 마지막 저서인 《부재 소유제와 최근의 기업(Absentee Ownership and Business Enterprise in Recent Times)》을 발표했다. 1924년 젊은 학자들이 베블런을 미국경제학회 회장으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오두막에서 살다가 1929년 7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책 앞 날개에 있는 저자 소개를 보고는, 음...... 강사 활동도 30대 중반에 시작하셨으니 빠르지 않고, 강사에서 조교수에서 강사로. 명성에 비하면 활동 내용이...... 책을 읽으면 저 상황이 대충 이해가 간다. 좋게 말하면 비주류, 나쁘게 말하면 왕따. 미국 자본주의를 계속 비판하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5장. 생활의 금전적 기준>의 말미에서는 학자계급을 비판하면서, 학자는 고상하고 희귀하게 보이기 때문에 재력의 관점에서 타당한 계급보다 상위계급에 속하게 된다. 그래서 학자의 체면유지를 위한 지출이 커진다. 명목상으로는 학자와 동등하게 여겨지는 계급에 비하여, 학자 계급의 일반적으로 부와 소득의 획득 능력으로 볼 때 지출 수준이 높은 것은 분명하다. 결국 학자계급만큼 수입을 과시적 소비에 충당하는 비율이 높은 계급은 달리 찾아볼 수 없게 된다고 비판하였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정치적 저술가 중 한 사람”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역자의 후기에서 베블런에 관한 재미있는 설명이 있다.

‘매일 침대를 정리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침에는 이불을 걷어찼다가 저녁에는 다시 끌어당겨 덮었다. 아주 게을러서 사용한 접시를 찬장이 텅 빌 때까지 계속 쌓아주었다가 한꺼번에 호스로 물을 뿌려 닦을 정도였다.(...)관행을 조롱하는 것을 좋아해서 학업 성과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같은 학점을 주었고......’

 

침대와 관련해서는 나와 비슷해서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나는 찬장이 빌 때까지 그릇을 쌓지는 않는다. 식사 후 바로 설거지(맞춤법이 바뀌었다)를 하는 내 친구와 달리, 나는 식사 후 그릇을 물에 담그기만 하고 다음 식사 준비를 하면서 그 설거지를 한다. 실제 베블런은 수강신청하는 학생들에게 같은 학점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강의를 개시했다고 한다. 나 같은 학생이면 좋아했을까.

 

베블런은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내가 죽거든 어떤 종류의 의식이나 추도식도 없이 최대한 빨리, 비용을 들이지 말고 화장해주기 바란다. 재는 바다에 뿌리거나 바다로 흘러갈 작은 시냇물에 뿌리기 바란다. 어떤 종류나 성격의 것이든 나를 회고하거나 나의 이름을 적은 비석, 석판, 비명, 기념물을 언제 어디서나 세우지 말기 바란다. 사망기사, 회고록, 초상화, 전기, 편지들은 인쇄되거나 발간되지 않기를 바라며 또 복사해서 유통시키지 않기 바란다.’

 

베블런의 일상과 유서를 보면 어떤 분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역자는 <옮긴이 머리말>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물질주의 문명을 이끄는 유한계급에 분노하여 19세기 말에 베블런이 쓴 이 책은, 그런 물질주의가 더욱더 판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타락에 분노하기 위해 다시 읽힐 필요가 있다. 그래서 좀 더 읽기 쉬운 번역본을 내놓는다.’

-그런데도 읽기 어려웠다.

 

19세기에 나온 책을 21세기에 읽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책을 읽다 보면 요즘은 쓰지 않는 당시의 단어들이 나온다.

급사장, 마부, 집 주인에게 잘 훈련된 피고용인, 여왕의 시중을 드는 궁녀, 수렵관 등 요즘은 쓰지 않는 단어들은 어색했다. 또한 앞에서도 ‘유한’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설명했지만 그 단어가 파생되어 ‘유한신사, 유한생활’등으로 확대된 것도 와닿는 느낌이 약하다. 96쪽에서는 과시적 소비의 예로 카펫, 태피스트리, 은그릇, 급사의 봉사, 실크햇, 예복 같은 것을 들고 있다. 이런 것도 어색하다.

 

<6장. 미적 감각의 금전적 기준>에서는 성직자의 의복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할 정도로 고가이고 화려하며 비기능적이다며 비판한다. 교황이든 조계종 관련자든 누구나 길고 치렁치렁한 옷을 입는다. 동국대 근처를 자주 가다보니 여름에 반팔 입은 스님을 보지 못했다. 승복은 반팔이 없는 건가. 불교신자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 반면, 개신교 목사님은? 목사님이 질질 끌리는 옷을 입으신 건 거의 못본 것 같은데.

 

가축에 관해서는 닭, 돼지, 소, 양, 염소, 산양, 짐말은 생산재이며 비둘기나 앵무새 같은 완상용 조류, 고양이, 개, 경주마 같은 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가축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러다가 저자가 고양이에 대해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고양이는 인간과 대등하게 생활하고 주종관계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 (129쪽)

아이고 냥이야. 너는 19세기 미국에서도 집사를 부리면서 살았구나.

 

<12장. 종교의례>에서는, ‘최근의 경제 조건에서 볼 때 신앙심이란 아마 어떤 경우에도 집단생활의 초기 단계 유물이고, 정신적 성장이 늦은 증거로 여겨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261쪽) 참 이해 가지 않는 것은 많은 미국의 학자들이 종교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미국은 왜 기독교적 사회관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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