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먼저 이것부터 말해야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검색했다. 보통은 숫자와 소수점 한글로 된 조합이 나오는데 이건 이상하게도 숫자 앞에 ‘큰’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래서 위치안내표를 들고 도서관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 ‘큰’이라고 써진 책은 어디 있나요?”
“저쪽 끝에 가시면 큰책이 별도로 있어요.”
엥, 큰 책? 가봤더니 진짜 사이즈가 큰 책이 따로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책 사이즈보다 큰 책들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글씨도 컸다.’
글자의 크기를 집에서 자로 재어보니 5mm 정도 나온다. 보통 책에 비하면 아주 큰 편이다. 지하철에 앉아서 읽다보면 옆사람이 ‘이 사람은 그림 없는 동화책을 보나?’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다.
어떤 선배가 자기는 요즘 눈이 침침해져 책을 못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노안이 시작되어 멀리 두고 보는 편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요즘에는 앞페이지인 경우도 있고 마지막인 경우도 있고, 초판 발행일, 지은이, 발행일, 펴낸곳, 주소, 전화 등등 책의 기본 정보가 나오는 페이지가 있다. 이 책은 그 페이지 제일 아래쪽에 다음과 같이 써져있다.
‘본 도서는 문화체육관광부(도서관정책기획단)가 주최하고 (사)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2019년 큰글자책보급 및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만들어졌습니다.’
문광부에서 이런 일도 하다니.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고. 감사한 일이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에는 한국도서관협회에서 기증했다는 확인도장이 찍혀있다.
책 뒷면 가격이 나올 부분에 '비매품'이라고 써진 걸로 봐서...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가 모두 큰글자책이 아니라, 내가 도서관에서 본 이 책만 큰글씨인듯하다.
다음, 저자 채사장 이야기. 채사장의 책은 다 읽은 것 같다. 채사장의 책 중 가장 독특한 내용의 책인 듯하다. 철학적인 내용도 있고, 수필적인 내용도 있고, 단편소설보다 짧은 이야기도 있다. 채사장의 책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으나,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채사장을 접한다면 ‘이 책 뭐지?’ 이런 느낌일 듯. 이 책은 도서관에서는 ‘지식 학문일반’으로 분류되었는데, 굳이 내가 정의 내린다면 ‘철학적 수필’정도. 사서가 이 책을 꼼꼼히 읽었다면 그렇게 분류했을 것이다.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자면 채사장의 책은 모두 ‘웨일북’에서 출판된 듯한데, 저자와 출판사의 공생관계인가.
채사장 책에는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다. 책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그림이나 표가 가끔 나온다. 이것이 저자의 아이디어인지, 출판사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그림이 아주 심플하고 간략하면서도 내용 정리를 깔끔하게 해주는 일러스트다. 글을 보고 이해한 내용을 그림을 통해 복습하는 느낌이다. 이건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
이야기 중에는 ‘소년병 이야기’시리즈가 인상깊었고, 그중 ‘소년병 이야기1’은 가슴아팠다.
책 내용중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초록색 포털 검색 결과 평점 9.53이다. 이 영화도 봐야할 리스트에 올려본다.
책 속에서 ‘세이킬로스의 노래’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악보가 있는 음악이라고 한다. 유튜브에서 이것을 소개하고 있다. 1분이 조금 넘는 짧은 영상이니 시간이 되면 들어보자. 가사가 인상적이다.
책 속으로
불안한 영혼이 안심하고 세상과 마주할 수 있기를.
(58쪽)
“가슴이 무너진 날, 그 사람에게로 가자. 그의 손을 잡고 이 밤을 보내는 거다. 바로 그 순간,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일상의 하찮음은 주변부로 사라진다.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그래서 그렇게도 놀라운 일이다.” (69쪽)
죽음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수동적으로 닥쳐오는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이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하나의 사고이고 돌발이며 일탈인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회피하고 거부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다음으로 능동적인 선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죽음을 전체 과정의 마무리로, 수작업의 마감질로, 여행의 마지막 날로, 긴 문장의 마침표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가진 이에게 죽음은 삶과 단절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길고 긴 인생을 마치고 결실을 수확하는 시간이 된다.
후자의 태도를 가진 이의 시야 안으로 끝이 들어서면, 그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을 것이고 무기력하게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 마지막 힘을 다할 것이다. 왜냐하면 드디어 정성스럽게 매듭지음으로써 인생 전체의 의미를 확정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으므로. (124쪽)
- 이미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지 정했다.
나는 자본주의가 생각보다 괜찮은 체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자본주의가 나의 생산자로서의 지위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강요한다. 특정 분야의 노동자라는 제한된 역할에 만족하라. 네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는 입을 다물고 소비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라. 나는 이것이 아쉽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놀지 못하고 관계 맺지 못하고 생각할 줄 모르는, 다만 소비해야 하는 존재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163쪽)
한국의 부모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일지 모르겠으나, 어릴 때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부모들의 욕망과 강요 때문에 아이들이 책을 집고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그것을 다 읽어낸 듯 행동하지만, 그것은 부모로부터 칭찬받고자 하는 심리에서 기인했을 뿐이다. 사실 그들은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다는 거은 단어를 따라가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펴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글을 깨쳐아 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체험이 필요하다. 독서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한글이 아니라 선체험이다. 우리는 책에서 무언가를 배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우리가 앞서 체험한 경험이 책을 통해 정리되고 이해될 뿐이다. (175~176쪽)
- 음... 저자의 생각에 동의도 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못 읽게 하는 것도 좀 그렇고. 어쨌거나 저자는 <어린왕자>를 예로 든다. 나도 대학교 때 <어린왕자>를 사서 다시 읽었다. 그 때 읽은 어린왕자는 내가 어릴 적 읽었던 어린왕자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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