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재미있다.
특별한 점은, 잘 읽힌다.
이 책이 잘 읽힌다는 건 아마도 저자가 다년간의 강의를 통한 경험이 누적된 것이 아닐까 한다.
독자에게 저자의 역사 강의를 보는 듯한 느낌에 빠지게 만든다.
이 책 저자는 최태성이다.
최근 역사 관련 방송을 보다 보면 자주 등장하시는 분이다.
(마치, 방송가에서 사라진 설민석을 대체하듯 나타나신)
설민석이 콕콕 찝어 얘기하는 스타일이라면
최태성은 구수하게 얘기로 풀어가는 스타일.
방송에서도 그렇게 보이는데 그런 게 책에서도 좀 녹아난 느낌이다.
다만 설민석의 책은 보지 않아서 책으로 비교는 못하겠다.
그리고 세계사 및 역사에 관해 책을 몇 권 쓰신 Y작가도 있는데, 그 분은 잘 나서 잘난 척을 심하게 하시는 편. 그분이 별로라는 얘기는 아니다. 잘나서 잘난 척을 하는 거니까.
잘났는데 잘난 척을 안하며 쉽게 얘기를 하는 사람, 그리고 더 와닿게 얘기하는 사람이 더 고수라 생각한다.
이 책은 ‘대부분’ 한국사를 다룬다.
여기서 ‘대부분’이라 함은
잠깐 유럽, 남미의 역사가 나오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역사를 다루는 것은 딱 이것 뿐이었다.
한국과 인접한 중국, 일본은 세계사라기보다는 한국사를 다루다보면 나오는 이야기 이니까 한국사의 배경에 관한 일부라 보고. 한국과 관련 없는 중국사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 책을 보면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역사라 하면 아마도 많은 암기에 짜증을 내었던 기억이 있을 거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정순헌철고순
역사 만점 받으려면 이거 외우는건 기본이다.
일부는 좋아했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나름 아무 재미 없는 과목은 아니지만
수업은 아무래도 암기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그런 역사 수업 같지 않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스타일은 매번 챕터 마다 다음과 같다.
“과거에 이러한 역사가 이런 배경으로 이렇게 일어났고 그때 누구는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보고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 걸 배워야 합니다.”
꼭 결론을 현재와 연결짓는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다룬 책 중에 이런 책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저자의 강의 목표가 단순한 ‘과거 사실의 기록’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람과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 같다.
점수를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적인 교양으로 한국사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추천한다.
책 속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전체의 관찬 사서, 기사본말체의 사찬 사서......’ 저자는 이런 것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친 게 아닌가 한다. 적어도 내가 시험을 보던 시절에는 기전체와 기사본말체를 꼬아서 문제를 낸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교과서 위주로, 학교 수업 중심으로” 공부만 하면 문제를 맞히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교과서에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가 나와도 그 역사 서술방식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연오랑 세오녀’이야기, 그리고 ‘시치미 뗀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 아마도 연오랑세오녀는 모르는 분도 있을 듯. 연오랑세오녀라고 들어보기는 했는데 이제 늙어서 잊었는지 책에서 처음 보는 듯 신선했다. 시치미
얘기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는데. 연오랑세오녀 이야기와 시치미 이야기가 궁금하면 책을 읽어보자.
시간이 되면 다음 기사를 읽어보자. 이 중 ‘직지봉’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해서
.http://http://san.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99
이 기사는 과거 매년 6월에 있었던 산악계의 기사를 정리한 것이고, 2008년 충북의 산악인들이 파키스탄 미답봉을 초등하고 직지봉이라고 이름지었다는 과거의 기사 요약이다.
세계적으로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청주 흥덕사에서 찍은 직지심체요절이 더 빨랐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활동이다. 이건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거지만
1. 직지심체요절의 효과와 구텐베르크의 효과를 비교할 수 있나?
2. 일제가 북한산의 이름을 이토오히로부미산이라고 이름 지으면?
2번부터 언급하자면
세계 최고봉의 이름을 에베레스트로 부르는 것을 비판하면 안된다.
왜 세계 최고봉을 에베레스트라고 부르는지는 알아서 찾아보자.
전 세계가 영국을 비판하는 포인트 중의 하나다.
그리고 1번 문제를 언급하자면
직지가 빨랐지만 직지는 대중적 효과가 없었고, 구텐베르크는 역사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게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차이다.
누가 금속활자를 먼저 발명했는가의 문제보다 그 영향력을 생각해보자.
여기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폭발력을 지닌 창조적 발명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117쪽)
솔직히 말하자면 충북의 산악인이 외국에 가서 ‘직지봉’이라고 이름을 짓고 온 곳이, 직지심체요절을 알리기 보다는 ‘이토오히로부미산’이라고(예를 들어) 이름 짓고 온 것 같은 쪽팔림을 지울 수 없다.
앞서도 얘기 했지만 이 책은 과거의 역사를 나열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의 일로는 사드 사태와 촛불시위도 언급된다. 우리는 ‘서희와 강동6주’라는 단어를 모두 기억할거다. 그런데 그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서희가 어떻게 강동6주를 얻었는지. 저자는 서희와 사드 문제를 연관짓는다. 여기서 저자의 능력이 보인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박수를 치고 싶었다.
이 책은 크게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22가지의 장면이 나온다. (표지에서도 나오듯이) 그런데 그 중 3번째 파트는 인물에 집중된다. 역사라는 것이 인물이 안나올수는 없다. 다른 파트에서는 사건과 인물이 나온다면, 세 번째 파트는 인물에 집중한다.
그. 런. 데.
그 인물이 정도전, 김육, 장보고, 박상진, 이회영 이다.
정도전, 장보고, 독립운동을 한 이회영 정도는 들어봤는데
김육, 박상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고려의 원종 이라는 임금을 들어봤나?
장수왕 하면 뭐가 생각나는가?
오래 산 고구려 임금. 광대토대왕 다음 왕.
그 이상은 없다.
장수왕의 외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어우동 하면 뭐가 생각나는가?
사극에서 그 어느 누구도 쓰지 않은 이상한 모자에, 어께를 들어낸 한복을 입은 여인.
나름 역사 공부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분들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면 책을 보자.
“내 인생을 바쳐 이루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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