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친구가 이 책<이하-베로니카>을 추천했다.
내가 소설을 좀 안좋아하기는 한데 친구 추천이니 안 볼수 없었다.
게다가 코엘료 소설도 선호하지는 않는다.
친구가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죽은자의 집청소> 서평을 보고 나서다.
친구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네버더레스, 서평은 쓰고 싶은대로.
이 책, 제목에서 할 일 다 했다.
그렇다 베로니카는 죽기로 한다.
(소설 리뷰라 책 내용에 관한 얘기가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책이 나온 지 시간이 좀 되어서 책을 읽지 않고 이 글을 보시는 분은 많지 않겠지만. 이후의 글은 스포가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영화<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 생각났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얘기가 나오니 또 정성일씨도 생각나는군.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슬쩍 나오던 잡지<키노>도 생각나고.
내 글이 선발되어 <키노>로고가 박힌 배낭을 받아서 K에게 주었는데.
그럼, 베로니카는 죽었을까?
그랬다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겠지.
이 책을 보고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생각났다.
자살이라는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베로니카>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베로니카>는 글이 전개가 좀 지루한 편이다.
주인공이 자살하려는 계기, 그리고 살려고 하는 배경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더 공감이 간다.
주인공이 자살하려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젊음이 지나면 내리막길이다. 노쇠와 질병, 사라져 가는 친구를. 고통의 위험만 커진다. 다른 하나는 세상의 상황이 점점 나빠진다. 자신은 그 상황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 (17쪽)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 베로니카는 24세다. 여태 살고 있는 나는 뭐라고.
베로니카는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자살시도로 몸이 안 좋아져 일주일 정도 살 수 있을거라는 얘기를 듣는다.
일주일이라.
뭐라도 하지 않을까.
그런데 주인공이 보내는 그 일주일은
나로서는, ‘왜 저렇게 살아’라는 느낌 밖에 들지 않는다.
죽으려 했던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저렇게 보낼까.
거두절미하고
글의 마지막에 소설 속 등장하는 박사의 논문 제목은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
(296쪽)
책의 마지막 역자의 말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언젠가 자신도 죽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막연한 미래의 일일 뿐 우리는 죽음을, 달리 말하면 삶의 진가를 잊고 산다.(301쪽)
4쪽을 조금 넘긴 옮긴이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책 속으로
“네가 또 ‘난 곧 죽을거야’라고 말하기 전에, 이걸 말해주고 싶어. 네가 지난밤에 경험한 그런 순간을 찾아 일생을 헤매지만 결국은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러니네가 지금 당장 죽어야 한다면,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죽어. 넌 잃을 게 아무것도 없어. 미래와 과거와 관련된 많은 것들이 걸려 있어서 감히 사랑에 빠져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 네 경우엔, 존재하는 건 오직 현재뿐이야.” (232쪽)
“난 네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대신,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병실로 와줬으면 좋겠어. 마지막 순간에 네 얼굴을 보게 해줘.” (276쪽)
-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 2030 축의 전환 (서평) (0) | 2022.06.29 |
---|---|
(도서) 28 : 정유정 장편소설 (리뷰) (0) | 2022.06.29 |
(도서)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 (서평) (0) | 2022.06.20 |
(도서) 내일의 부. 오메가편. 2편 (리뷰) (0) | 2022.06.15 |
(도서) 산정한담 (서평) (0) | 2022.06.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