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생물진화학 책으로 분류하였다.
이것에 대해 이의를 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생물학책 치고는 생각보다 사회학적인 부분이 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이기적 유전자>로 시작되어 <총 균 쇠>로 마무리된다.
책의 뒤 표지에는 한국인 세 분의 추천사가 있는데
(사실 이것 때문에 골랐다)
최재천, 강양구가 나온다.
책을 보다 보면 가끔 추천자 때문에 말리는 경우가 있는데
(추천자 믿고 봤더니 별로인 경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최재천의 마지막 한마디를 인용하면
“정연한 논리로 이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은 참 오랜만이다.”
강양구의 마지막 한마디를 인용하면
“짜릿한 지적 자극을 줄 뿐만 아니라 인류애까지 고양하는 좋은 책이다.”
가끔 추천사를 보면
그 사람이 그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가 판단이 된다.
단순히 인간적인 인연에 의해 추천사를 쓰는 사람은 그 저자에 대한 썰을 풀지만 책에 대한 언급은 잘 없다.
위 두 분의 추천사를 보면 책을 읽어봤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 않고는 이 책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간만에 재미 있는 책이 손에 걸려서 흥미롭게 봤다.
내가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는 다정하지 못하기 때문인 걸로 밝혀졌다.
책 속으로
서구권의 책을 보면 보통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사랑하는 **에게”
“그동안 나와 함께 해준 **과 두 아이들을 위하여”
이런 비슷한 문구들이 나온다.
한국 서적은 이런 문구를 보통 잘 쓰지 않는다.
이 책은 이런 문구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모든 인류를 위하여” (9쪽)
솔직히 이걸 보고는 ‘이건 뭐지?’ 생각 들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면 이게 이해가 된다.
본 책 중에 가장 멋진 오프닝 문구였다.
그리고 이 책에 어울리는 말이다.
최재천은 추천사에서
IQ는 침팬지가 높지만
사람 아이는 4개월이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침팬지는 손가락 끝을 바라보고
개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공을 물어온다. (5쪽)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을 공감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이 내용이 본문에서 굉장하게 자세히 나오는데 역시~라는 생각이 든다.
추천사 중에서는 이 말이 가장 깊이 와닿는다.
“가장 다정한 늑대들을 우리가 잡아다가 길들인 게 아니라 가장 붙임성 있는 늑대들이 우리와 함께 살기로 선택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6쪽)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한다.
우리는 내집단에게는 다정하지만, 외집단은 배제하고 잔인해지기도 한다.
“우리의 이 이중정 본성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사회적, 정치적 양극화를 해결할 새로운 해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21~2쪽)
책의 첫 번째 장에서는 저자의 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개의 이름이 ‘오레오’다.
아~~~ 오레오.
그렇다. 검정색 개다.
‘초코’, ‘커피’, ‘깜이’, ‘까뮈’라는 개를 키우시는 분은 격하게 공감하실 듯.
요즘에는 ‘검둥이’는 없는 듯^^
책에서는 스탈린의 대숙청사업에 관한 내용이 잠깐 나온다.
그 덕분에 이 책의 적지 않은 부분이 완성된다.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스탈린의 외부효과.
스탈린 덕분에 이런 실험이 가능했다. (2장. 59쪽~)
스탈린에게 감사한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다.)
책에서는 보노보와 침팬지에 관한 비교가 나온다.
그동안 익숙했던 보노보와 침팬지는 집단 행동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노보와 침팬지의 차이는 책을 통해서 확인하고.
그러면서 제인 구달은 어떻게 평가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달은 침팬지를 연구하지 않았나?
그녀의 책을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못하겠다.
사진도 나오는데 (99쪽) 사진 한참 봤다.
21세기에 나왔던 <혹성탈출> 시리즈의 ‘시저’를 아마 대부분 아실 것이다.
(20세기의 혹성탈출 시리즈 말고)
나는 ‘시저’가 침팬지라고 생각했는데
책에서 나온 사진을 자세히 보니 침팬지보다는 보노보에 더 가까운 듯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의 사진 기준으로’
나도 동물원에서 침팬지를 봤지, 보노보는 못 본 것 같다.
보노보와 침팬지를 비교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지와 약지의 길이 차이에 관한 얘기도 아마 들어봤을 것이다.
이 얘기는 아는 사람은 아는 거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거고.
침팬지는 검지가 약지보다 짧았지만 보노보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103쪽)
밀그램의 복종실험.
다 아는 얘기라 언급할 것 없고.
벤듀라라는 학자가 이를 조금 변형하여 실험하였는데
인간적인 평가와 비인간적인 평가에 따라 강도의 충격이 달라졌다는 실험이다. (216쪽)
나도 조금 더 사람다운 훈육을 받았었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텐데.
나에게도 '가족'이 있었더라면.
책에서는 ‘LGBTQ’라는 용어가 아무런 해설과 주석 없이 그냥 그대로 나온다. (265쪽)
괄호 해서 설명할 만한 단어 아닌가.
아니면 간단하게 ‘성 소수자’라고 번역해도 되지 않을까.
30년 쯤 전에 어떤 미국 영화를 보는데 영어 대사가
“Are you a lesbian?” 이렇게 나오고, 한글 자막은
“너 레즈니?” 이렇게 나왔다.
이거 뭔 소리야. 거꾸로 나와도 이해할 텐데. 자막질로 자랑하고 싶었나보다.
‘레즈비언은 보통 줄여서 ‘레즈’라고 한단다. 넌 그걸 아니?’
이 얘기를 친구네 집에서 친구 누나와 친구에게 얘기를 했더니 누나가 그랬다.
“레즈가 레즈비언을 줄여서 말하는 거야.”
“그건 저도 아는데요. 영어 대사가 이렇구요. 한글 자막이 이랬다구요. 이게 더 웃기지 않아요?”
친구 누나는 아무말 못했다.
친구 누나와 이 책의 역자는 김활란의 후배다.
저자는 본문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맺는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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